[광화문에서/공종식]美명문大서 고전하는 한국수재들

  • 입력 2009년 3월 11일 03시 00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2007년 12월에 하버드 등 미국 8개 명문대에 입학한 신입생 7000여 명을 대상으로 출신 고교를 조사한 적이 있다.

그런데 한국의 A고교가 13위, B고교가 25위를 차지해 화제가 됐다. 당시 A고교의 미 명문대 진학률은 14.1%. 1년에 학비만 수만 달러에 달하는 미국 명문 사립고교 진학률을 무색하게 할 정도였다.

한국에서 고교를 졸업한 뒤 미국 명문대로 직행하는 유학생이 늘고 있다. 이 같은 수요가 커지면서 국제반을 운영하는 고등학교도 크게 늘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미국 대학에서 잘 적응하고 있을까. 일각에선 미 명문대에만 합격하면 모든 것이 만사형통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낯선 환경, 언어장벽 등 어려운 점을 극복하고 잘하고 있는 학생도 많다.

그런데 현지 대학 관계자들에 따르면 상당수 한국 학생은 고전한다고 한다. 기자는 지난해 초 아이비리그 재단이사로 있는 교포 1.5세인 J 씨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모교인 대학 재단이사회에서 최초의 아시아계 이사였다.

학생선발 업무도 담당한 적이 있다는 그에게 “요즘 똑똑한 한국 학생이 많이 진학했는데, 잘하나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J 씨가 한숨을 푹 쉬었다.

“몇 년 전부터 한국 학생들이 우리 대학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같은 한국인으로서 솔직히 기대가 컸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뒤 점검해보니 한국 학생들이 대체로 학업 등 학교생활에서 썩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대학 측이 적잖이 실망하고 있다. 우리 대학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비리그도 아마 그런 평가를 내리고 있을 것이다.”

그는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등이 이런 실망감으로 앞으로 2, 3년 동안은 한국 학생을 적게 뽑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기도 했다.

만점에 가까운 미국대학수학능력시험(SAT) 점수를 딴 학생들이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그의 대답은 이랬다.

“SAT 점수도 중요하다. 그런데 아이비리그는 SAT(2400점 만점) 2200점을 넘긴 학생들은 대체로 비슷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본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얼마나 문제를 깊이 보는지, 지도자의 역량을 갖췄는지, 창의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능력을 갖췄는지다.”

한국 학생들은 특히 에세이 작성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교포 2세로 현재 하버드에 재학 중인 김모 씨(19)는 “대학에선 깊은 사고력을 요구하는 에세이 과제물이 많은데 여기에 익숙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한국 친구를 많이 봤다”며 “또 한국 학생끼리만 어울리는 등 다른 학생들과 잘 사귀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사실 한국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미 명문대에 합격한 학생들은 대단한 실력파다. 다만 오랫동안 주어진 문제를 풀이하는 데 익숙한 한국식 교육환경에 있다가 다른 환경에 노출되면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최근 다트머스대 신임 총장으로 선임된 김용 하버드대 의대 교수는 “대학의 목표는 미래의 지도자들을 훈련시키는 것인 만큼 대학에서 학생들을 세상을 바꾸게 될 기술로 ‘무장’시켜야 한다”며 “아이비리그 대학 총장이 된다는 것은 엄청난 기회”라고 말했다.

한국 최고의 수재들도 잘 적응하지 못한다는 미 명문대. 대학의 기능은 뭔지, 어떤 교육이 바람직한지 등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공종식 국제부 차장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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