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고시에까지 미친 경제위기 공포

  • 입력 2009년 2월 23일 15시 56분


'경/제/위/기/극/복'

2월21일 치러진 행정고시 1차 시험이 뒤늦게 화제를 모으고 있다.

시험 경쟁률이 특이하게 높았던 것도, 시험 도중 불미스러운 사고가 벌어진 것도 아니다. 다만 시험문제지에 부여된 '책형'이 독특했기 때문이다.

책형이란 부정행위 방지를 위해 문제 배열을 다르게 한 문제지 형태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가형, 나형…' 또는 'A형 B형 …'등이 사용된다. 답안지를 제출하거나 나중에 정답을 확인할 때, 책형을 구분해야 하기 때문에 수험생들에게는 꽤 민감한 요소 가운데 하나다.

이번 행정고시 1차 시험이 화제가 된 이유는 '경/제/위/기/극/복'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책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문제 유형이 2가지 종류였던 1교시에는 '경'형과 '제'형이 출제됐고 2교시에는 '위'형과 '기'형, 3교시에 '극'과 '복'형이 제시됐다고 한다. 그 의도를 몰랐던 수험생들은 처음 문제지를 접하고 적잖이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시험을 치른 K모씨(25·고려대)는 "3교시를 끝마치고서야 정체모를 책형이 '경/제/위/기/극/복'임을 알게 됐다"면서 "조금은 낯설기도 했지만 신선해 보이기도 했다"는 평을 인터넷게시판에 남겼다.

행정고시 책형에 이 같은 아이디어를 접목한 사람은 행정안전부 시험출제과 공무원들로 알려졌다. 이 부서의 한 사무관은 "현 시점에서 공무원에게 가장 적합한 단어를 찾다가 이 6자 글자를 고안하게 됐다"면서 "예전에도 실제 사용되는 단어를 책형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어색하지는 않다"고 답했다.

이전에도 행정고시 등에서 '가-나-다' 대신 공무원의 바람직한 자세를 뜻하는 '섬/김' '봉/사' 등의 단어를 책형으로 사용한 선례가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같은 행정안전부의 행정고시 책형 조어에 긍정적인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수험생은 "정부가 시험을 갖고 장난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거나 "작년까지만 해도 위기가 아니라고 우기더니 결국은 고시에까지 경제위기 극복을 강조하게 되다니 처량하다"고 평하기도 했다.

정호재 기자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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