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인철]‘국민 교육장’ 명동성당

  • 입력 2009년 2월 20일 02시 56분


출근길에 김수환 추기경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명동성당을 찾았다. 성당으로 가는 길에 마주친 거대한 ‘인간 띠’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검은 옷차림의 조문 행렬은 성당 입구에서 가톨릭회관, 세종호텔, 명동역으로 이어지더니 다시 명동 뒷골목까지 구불구불 몇 겹으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성당 입구에는 김 추기경이 늘 입에 달고 살았던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플래카드가 눈길을 끌었다.

영하의 날씨에 2, 3시간을 기다려 겨우 몇 초간 추기경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고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19일 조문은 오전 6시부터 시작되지만 조문객들은 한 시간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렸다. 지방에서 여러 번 차를 타고 상경한 사람도 있었다.

조문객은 비단 신자만은 아니다. 종교를 믿지 않는 이, 다른 종교를 가진 이, 남녀노소 등 말 그대로 보통사람들이었다. 노숙인도 검은 리본을 가슴에 달고 줄을 섰다. 장시간의 기다림이 지루하고 지칠 법도 하건만 조문객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평온하고 경건한 모습이었다.

밤에는 직장 일을 끝내고 들른 넥타이 부대들이 부쩍 늘었다. 특히 김 추기경의 시신이 입관되면 얼굴을 볼 수 없어 이날 참배객이 전날보다 크게 늘었다고 한다.

수많은 인파가 다녀갔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혼잡하고 무질서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고요함 그 자체였다. 스스로 줄을 서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화를 하고, 쓰레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초등학생 아들딸을 데리고 나온 임순재 씨(38·여)는 “각막까지 이식하고 떠난 추기경을 보기 위해 꼭 와봐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며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추기경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 씨의 아들 김건휘 군(10)은 “추기경 할아버지를 잘 모르지만 스님, 목사님하고 다 친하고 평화통일을 원하셨던 분 같다”며 “나도 추기경님처럼 착한 일을 많이 해서 천국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조문객 중에는 구내 서점에서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등 김 추기경 관련 책을 한두 권씩 사들고 가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성당을 나서서도 ‘기적’은 이어진다. 성당 입구에 마련된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테이블에는 장기기증 서약을 하는 이들이 줄을 섰다. 본부 관계자는 “이곳에서만 200명이나 장기기증 서약을 했다. 추기경님이 이 외로운 운동에 불을 댕겨주신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왜 이런 ‘추기경 신드롬’이 생긴 것일까. 한 사람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주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공허하고, 기댈 곳이 없고, ‘큰어른’이 없다는 반증일지 모른다. 자신이 말한 대로 실천한 한 성직자의 모습은 입신양명(立身揚名)과 재색명리(財色名利)에 밝은 속인(俗人)들에게 큰 가르침을 준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진보냐 보수냐, 네 편이냐 내 편이냐를 놓고 서로 헐뜯기 바쁘다. 나름대로 존경받는 이들의 권위를 어떻게 하면 깎아내릴까 혈안이다. 인터넷에서 일부 누리꾼들이 김 추기경마저도 비난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니 씁쓸하기만 하다. 그래서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이 없어라’라는 김 추기경의 묘비명이 우리를 더욱 겸손하게 만든다.

이인철 사회부장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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