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이영]‘신문-방송 겸영’ 가로막는 아날로그식 사고

  • 입력 2009년 2월 13일 03시 27분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영국과 프랑스를 순방하던 중 기자들에게 “(양국 미디어 정책자들과의 대담에서) 신문과 방송의 겸영 이야기를 꺼내기가 미안했다”고 말했다. 두 나라는 신방 겸영을 넘어 글로벌 미디어를 육성하기 위한 매체 융합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티븐 카터 영국 통신방송 장관도 9일 최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은) 왜 그 문제를 지금 논의하느냐”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최 위원장은 “만나는 사람마다 미디어 산업 개편과 디지털 시대의 대응을 핵심 과제로 꼽았다. (한국처럼) 미디어 자본의 교차 소유가 논란이 되는 건 디지털 시대에 웃기는 일”이라고 말했다.

신방 겸영을 허용한 영국에서는 호주 출신의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이 일간지 더타임스와 영국 최대 위성방송 BSkyB를 갖고 있다. 초기엔 반발이 있었으나 “영국인이 아닌 머독 회장이 여러 미디어를 갖고 있다고 해서 시비 거는 사람이 없다”는 게 현지 당국자들의 전언이다.

프랑스도 최근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주도로 글로벌 미디어를 육성하기 위해 ‘미디어 간 칸막이’를 허물거나 규제 철폐를 논의하고 있다. 르몽드 출신 기자로 이 논의에 민간 대표로 참석한 베르나르 스피츠 인쇄매체발전대책위원회 총괄조정관은 “글로벌 미디어그룹으로 도약해야 세계에 프랑스의 목소리를 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짧은 일정이긴 하지만 두 나라의 미디어 산업 현장을 보면서 기자는 국회에서 신방 겸영에 대한 논의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는 우리 현실이 21세기 디지털 시대와는 한참 거리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특히 민주당이나 전국언론노동조합 등은 신방 겸영이 여론 독과점을 야기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영국 카터 장관의 말은 달랐다. 그는 “영국도 한국처럼 여론 독과점에 대한 우려가 제기돼 ‘공공성 평가’ 제도를 도입했지만 한 번도 작동되지 않았다”며 “신방 겸영의 허용 이후 여론 독점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없었다”고 말했다. 수백 개의 채널이 쏟아지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여론 독과점을 우려하는 것은 낡은 패러다임의 발상이라는 게 언론학계의 지적이기도 하다.

신문 방송 통신 인터넷이 융합하는 ‘미디어 빅뱅’은 지구적 범위에서 초 단위로 급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 기초인 신방 겸영의 문턱도 못 넘고 있는 우리는 여전히 아날로그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

조이영 문화부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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