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장환수]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께

  • 입력 2009년 2월 13일 02시 59분


최근 체육계는 큰 혼란을 겪었습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와 대한체육회장 인선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입니다.

신 차관께선 지난달 23일 문화부 정례 브리핑에서 이례적으로 대부분 시간을 체육에 할애했습니다. 체육 얘기는 거의 하지 않던 예전 문화부 제2차관의 브리핑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날 참석한 출입기자들은 깜짝 놀라며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체육인들이 정부의 지원과 관심에 목말라 있듯 체육기자들도 비슷한 심정이기 때문입니다.

신 차관께선 “KBO 총재나 체육회장에 대한 승인권은 우리가 갖고 있지만 옛날처럼 낙하산은 절대 안 한다. 정치인이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3일 기자간담회에선 한발 더 나아가 “체육인들이 자율적으로 좋은 분을 선출하기 바란다. 올해가 관치 체육을 탈피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분위기에 취한 탓일까요. 문화부의 한 관계자는 “이연택 회장의 재출마 여부도 스스로 결정하실 일”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땠습니까. KBO 총재로는 9일 유영구 명지의료재단 이사장이 만장일치로 추대됐습니다. 유 이사장은 지난해 말 프로야구단 사장들의 추천을 처음 받았을 때 문화부가 사실상 낙마를 시킨 분입니다. 이사회가 아닌 이사 간담회에서의 추천은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이유였지요. 하지만 이는 빈말이었습니다. 당시 모 정치인이 총재로 낙점을 받은 상태라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부에선 이후 유 이사장께 체육회장을 맡는 게 어떠냐고 권유한 것 아닙니까. 다행히 교통정리가 돼 유 이사장은 야구로 다시 방향을 틀 수 있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자율’이라 불러도 될까요.

신 차관께서 직접 하신 말은 아니지만 이 회장의 재출마도 가능하다는 말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이 회장은 바로 다음 날인 4일 입술을 깨물며 불출마 선언을 했습니다. 이 회장은 진작부터 자신의 재출마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동아일보는 이미 지난달 15일 이 회장의 불출마 기사를 썼습니다. 당시 신 차관으로부터 “이 회장 문제는 정리됐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체육계 구조조정과 관련한 입장 변화도 흥미롭습니다. 신 차관께서는 취임 초기에 “체육회에서 대한올림픽위원회(KOC)를 분리하고 국민생활체육협의회와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선 거두절미하고 “체육인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발을 뺐습니다. 이 과정에서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채 기자들에게 구조조정을 얘기했던 체육국장만 윗분의 뜻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죄로 혼쭐이 났지요. 왜 방침이 바뀌었는지, 그 명분과 대의는 무엇인지 지금이라도 분명히 해야 하지 않을까요.

신 차관의 영역을 벗어난 것일 수도 있지만 여당 정치인의 체육회 가맹 경기단체장과 관련 기관장 취임은 도를 넘은 수준입니다. 정권이 바뀐 뒤 한나라당 전현직 국회의원 5명이 새로 경기단체장이 됐습니다. 체육회와 함께 체육 관련 4대 기관장으로 불리는 국체협 회장과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한국마사회장도 한나라당 출신 인사입니다.

이런 걸 두고도 관치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인사와 관련해 누가 돼야 하고, 누구를 반대한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차관의 ‘관치 체육 탈피’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길 바랄 뿐입니다.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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