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 기자의 digi談]한국에 닌텐도가 없는 이유

  • 입력 2009년 2월 10일 02시 59분


“닌텐도 게임기 같은 것을 우리는 왜 못 만드느냐”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 이후 정보기술(IT) 업계엔 ‘닌텐도 담론(談論)’이 한창입니다.

‘한국의 닌텐도’가 탄생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려면 일본 닌텐도가 한국에서 성공했는지를 따져보는 것이 좋은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게임업계 사람들은 닌텐도가 한국 시장에 200만 대의 닌텐도DS를 판매했지만 한국 사업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다른 나라보다 게임팩이 팔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닌텐도는 불법 복제가 만연한 한국 시장에서는 게임기 1대당 게임팩을 2개도 팔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반면 한국을 제외한 세계 시장에서는 1대당 평균 5.39개의 게임팩을 팔고 있죠.

한국 시장은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가 불가능한 신제품이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가 가능한 구형 제품보다 싼값에 팔릴 정도로 왜곡된 시장입니다.

▶2008년 12월 9일자 B1면 참조 거꾸로 가는 ‘디지털 코리아’

그만큼 ‘한국의 닌텐도’가 탄생하기 어렵다는 얘기죠.

국내 기업들의 역량도 문제입니다.

한국의 기업들은 일본 기업보다 휴대전화와 디지털TV를 더 잘 만들면서도 닌텐도를 능가할 게임기를 만들지 못합니다.

실제로 게임기 개발에 나섰던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은 닌텐도의 ‘위(Wii)’에 맞설 게임 플랫폼을 개발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국내 대기업들은 ‘닌텐도보다 더 좋은 게임기’를 개발하려고만 했지 구체적으로 어떤 개념의 새로운 게임기를 창조할 것인지는 생각하지 못하더라”고 말했습니다.

뛰어난 기기를 제조한 뒤 이를 편리한 소프트웨어, 재미난 콘텐츠와 묶어 상품을 만들어내는 ‘소프트파워’가 부족하다는 지적입니다.

일례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미국 애플의 아이폰에 필적할 휴대전화를 가장 잘 만드는 회사이지만 아직 아이폰과 같은 휴대전화를 창조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국내 중소기업들은 ‘한국의 닌텐도’가 될 수 있을까요.

한국의 한 중소기업은 닌텐도DS 못지않은 게임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닌텐도만큼 다양한 게임팩을 제공하지 못해 눈길을 받지 못했습니다.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지 못한 탓입니다.

한국의 닌텐도는 착한 소비자와 창조적인 게임 개발자, 꾸준한 시장 등의 기업 생태계가 조성됐을 때에야 비로소 탄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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