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몇몇 사제의 시국선언, 천주교 전체 뜻과 거리 있다

  • 입력 2009년 2월 4일 03시 01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그제 서울 청계광장에서 용산 참사 희생자 위령미사를 열고 명동성당까지 가두행진을 벌였다. 일부 신부는 ‘학살만행 이명박 퇴진’ 같은 피켓도 들었다. 사제단이 발표한 ‘재앙과 파국의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은 운동권의 조악한 격문 수준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해 ‘대통령의 책임’이라고 엉뚱한 비난을 퍼붓는가 하면 ‘교만과 탐욕의 노예가 된 어리석은 통치자’ 같은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김영식 신부는 강론에서 경찰관을 뺀 5명의 용산 참사 희생자를 ‘열사’라고 불렀다.

이 사제단은 1974년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의 구속을 계기로 태동한 단체다. 1987년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 때는 경찰의 축소, 조작 수사를 폭로하기도 했다. 그 후 6월 민주항쟁의 산물인 민주헌법에 따라 정부가 평화적으로 5번이나 교체됐다. 그럼에도 이 사제단은 국민이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한 정부와 군사독재정권을 동일시하고 있다. ‘1987년 어느 대학생의 죽음의 진실을 왜곡하고 은폐했던 철옹성 같던 군사독재정권이 붕괴되었다는 점을 상기시켜 드려야겠습니다’라고 주장한 선언문 내용은 몇몇 사제의 시계가 아직도 22년 전에 멈추어 있음을 보여 준다.

천주교는 전국에 4300명가량의 사제와 520만 명의 신도를 두고 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500명 정도의 신부가 참여하고 있다고 스스로 주장하지만, 천주교 내부에서는 실제 100명 안팎으로 보고 있다. 이날 청계광장 미사에 참석한 신부와 수녀는 모두 합해도 100명 남짓이었다. 천주교 주교회의는 작년 사제들의 촛불 미사 때 “정의구현사제단은 공식기구가 아니기 때문에 촛불 미사는 천주교를 대표하는 견해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천주교 관계자는 “성전이 아닌 장소에서 미사를 집전하려면 주교회의나 교구장의 인준을 받아야 한다”며 “청계광장 미사는 엄밀히 말하면 교회법을 위반했다”고 말했다. 소수의 사제가 미사의 형식을 빌려 벌인 집회와 시위는 천주교 전체 의사와 동떨어진 것이다. 주교회의의 사목(司牧)을 따르는 신도들은 소수의 사제가 일부 좌파 폭력시위단체와 어울려 집회를 여는 것에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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