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다함께/함께 사는법]<1>2009다문화 현주소-日·佛

  • 입력 2009년 2월 2일 02시 59분


배려와 포용… 무서운 거리 대신 ‘질서있는 공생’ 꽃피워

■ 공존문화 만든 日 오이즈미

《외국인 이웃이 급격하게 늘고 있다. 글로벌 시대로의 진입이 실감난다. 단일민족을 넘어 피부 색깔과 언어, 문화가 다른 사람끼리 어울려 사는 법을 배워야 할 때다. 10년, 20년 뒤 서울 구로구와 경기 안산시가 어떤 모습일지는 이제부터 ‘다문화 공생’을 어떻게 가꾸느냐에 달려 있다. 역사나 사회문화적 배경은 다르지만 공생을 실천하는 일본의 오이즈미가 될 수도, 아니면 폭력과 범죄로 얼룩진 프랑스의 생드니가 될 수도 있다.》

학교로 가정으로 찾아가는 타향살이 지원

문화적응 프로그램 통해 ‘이웃’으로 변모

일본 군마(群馬) 현 끝자락의 오이즈미(大泉) 마을. 도쿄에서 북쪽으로 80km 떨어진 작은 도시에 들어서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간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인구 4만2000여 명의 오이즈미 마을에 터를 잡은 외국인은 7000명이 넘는다. 외국인 비율이 16.7%로 일본에서 가장 높다. 그중 5000여 명이 브라질 사람이다. 브라질 사람이 많은 것은 1990년 법 개정으로 해외 일본계 2, 3세에게 취업제한을 없앤 데서 연유한다. 이로 인해 20세기 초 일본인이 대거 이민을 떠났던 브라질에서 거꾸로 일본계 2, 3세가 몰려들었다.

산요전기, 후지중공업 등 대기업 부품공장이 밀집한 오이즈미로 외국인이 모인 것은 이때부터다. 공장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해답은 오이즈미의 다문화 공생 프로그램에 있다.

오이즈미는 1990년부터 포르투갈어 학습도우미를 모든 초중학교에 배치하고 일본어 교실도 운영했다. 포르투갈어가 가능한 직원을 채용하고 각 시설에 일본어와 포르투갈어를 병기한 것도 이 무렵.

일자리가 많은 데다 사회 적응까지 당국이 도와주자 외국인들은 일본의 다른 지방에 있는 자국인뿐만 아니라 모국의 친지까지 불러들였다. 행정과 기업, 외국인 3자가 공생하면서 다문화 사회를 이뤄 낸 것이다.

오이즈미는 ‘질서 있는 공생’을 표방한다. 외국인이 살기 편하도록 배려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본의 제도와 관습, 문화에 적응하도록 도와주자는 것이 질서 있는 공생의 핵심이다.

지난달 3일 만난 오이즈미 공보국제과 가토 히로에(加藤博惠) 씨는 “외국인이 쓰레기 분리수거 방법을 몰라 아무렇게나 버리는 등 공공도덕이 달라 서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을 방치한다면 이를 공생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이해의 폭을 넓히고 상대방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수준이 돼야 진정한 공생이 가능하고, 그 핵심은 ‘질서’라는 얘기다.

이를 위해 오이즈미에선 매월 포르투갈어 정보지를 발간하는 한편 분기별로 방재대책, 의료, 주택 등 자세한 생활정보를 담은 특집호를 발행한다.

오이즈미는 10여 년 전부터 외국인과 공무원, 사회단체 3자가 참여하는 ‘다문화 공생 간담회’를 운영해왔다. 외국인 지원 못지않게 지역사회에 직접 참여토록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간담회에 참석하는 외국인이 확 줄었다. 불경기로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할 판에 간담회에 나올 여유가 없는 것이다. 일자리를 잃는 외국인이 늘어나면서 공생이 위기를 맞은 것도 사실이다. 이에 내놓은 대안이 ‘찾아가는 서비스’다. 외국인이 있는 현장으로 공무원이 직접 찾아가 상담과 생활지도를 해주는 것이다. 가토 씨는 “낮밤을 가리지 않고 몇 사람만 있어도 달려간다”고 말했다.

오이즈미에서 외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요리 강좌까지 여는 것을 보면 배려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대부분 맞벌이 가정이어서 스스로 끼니를 차려 먹는 아이가 많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2007년 4월엔 ‘다문화 공생 커뮤니티센터’가 문을 열었다. 센터가 요즘 힘을 쏟는 것은 문화 통역 사업이다. 일본 문화를 이해하는 동시에 2개 언어 구사가 가능한 ‘문화 통역자’를 통해 일본생활 가이드를 해주자는 취지다.

오이즈미=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 폭동 겪은 佛 생드니

▼취재중 등뒤서 덮친 폭력 - 무관심의 공포

佛 다른 지역 ‘어울림의 문화’와 너무 달라▼

프랑스 파리 근교 생드니.

2005년 이민계 청소년 폭동의 근거지다. 북아프리카 청소년이 주축이 돼 발생한 그 폭동으로 프랑스가 이민자의 통합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세계 언론에 부각됐다.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취재하기 위해 지난달 29일 생드니 중심가 레퓌블리크 거리를 찾았다. 오가는 사람은 흑인과 아랍계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날이 저물고 있었다. 청소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방향을 맞춰 사진을 찍는데 플래시가 터졌다. 범죄자가 많은 이곳은 사진에 민감하다. 낌새가 이상해 서둘러 빠져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30초쯤 걸어가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누군가 기자가 손에 들고 있던 디지털 카메라를 확 잡아채는 게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카메라를 잡아 뺏기지는 않았다.

놀란 가슴에 더 발걸음을 재촉했다.

다시 30초쯤 지났을까. 갑자기 누군가 기자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면서 두 눈에 대고 스프레이로 뭔가를 확 뿌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최루가스였다.

잠시 후 눈을 떠 한 50대 남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기자를 슬며시 끌더니 가까운 중국인 상점으로 들어가 도움을 요청하라고 말하는 것으로 더는 간여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중국인 상점으로 들어갔다. 여성용품을 파는 매장이었다. 중국인 주인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경찰을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물건을 사러 매장에 들어와 있던 젊은 여성 고객들이 기자를 둘러싸고 사정을 물어왔다. 한 아랍계 여성과 한 흑인 여성이 특히 관심을 보였다. 경찰을 불러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들은 “그랬다가는 주인이 공격을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대신 자신들이 기자를 에워싸고 매장을 나가겠다고 제안했다. 서너 명의 다른 여성도 함께 도와주기로 했다. 그들은 불량 청소년들이 공격을 해오면 자신들이 소리를 질러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겠다며 주저하는 기자를 설득했다. 그들의 도움으로 겨우 레퓌블리크 거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 다른 지역이 모두 생드니 같지는 않다. 프랑스는 합법적인 이민자가 49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8.1%에 이르는 다문화 사회다. 여러 인종이 모여 사는 다문화 사회답게 이민자들을 프랑스인으로 동화시키려는 노력도 이뤄지고 있다.

프랑스 파리 13구의 시립성인학교. 지난달 30일 프랑스어 강좌의 1학기 종강시간.

이 강좌의 교사는 이란 출신의 코다가르 씨.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 후 부모와 함께 이란을 떠나 프랑스에 정착한 사람이다. 이날 학생들이 그의 강의에 감사하며 돈을 모아 작은 선물을 전달했다. 전달자는 쿠바 출신의 마르레니 레베르 씨. 프랑스인 남편과 결혼했지만 아직 4년이 지나지 않아 프랑스 국적을 얻지 못했다. 이 학교에는 남미 출신도 적지 않다.

생드니에서와 같이 소수의 불량자가 선량한 다수를 압도하는 곳도 있었지만 프랑스는 다문화 공생문화가 꽃을 피운 국가임에는 틀림없어 보였다.

헝가리 출신 이민자의 아들인 니콜라 사르코지를 대통령으로 내세운 곳도 프랑스가 아닌가.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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