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기현]“나도 金청장처럼 될라”…공무원 복지부동

  • 입력 2009년 1월 24일 02시 56분


“그 양반(김석기 서울경찰청장)도 참 답답해요. 경찰 총수 자리를 눈앞에 두고 가만히 있지 왜 그렇게 ‘일’을 벌였는지 모르겠어요.”(중앙 부처 한 과장급 공무원)

“시위대가 시너와 화염병을 갖고 있으면 이젠 경찰이 꼼짝 못하는 거죠, 뭐….”(서울경찰청 간부)

23일 서울경찰청과 바로 옆의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만난 공무원과 경찰관들에게 김 청장의 거취 문제는 큰 관심사였다.

이들은 한결같이 “이런 시기에는 ‘입 조심’이 최고”라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어렵게 털어놓은 속내에서는 자조와 냉소를 엿볼 수 있었다.

한 과장급 공무원은 “경찰이 무리한 작전을 했으면 책임지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이번 사건을 보니 공직자의 목숨은 ‘운칠복삼(運七福三)’인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전적으로 운에 달렸다는 얘기다.

경찰의 한 간부는 “조기에 진압하지 않고 팔짱만 끼고 있다가 농성자들이 던진 화염병에 시민이 다치기라도 했다면 김 청장에게 또 책임을 묻지 않았겠느냐”고 항변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공직사회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납작 엎드린 공직사회를 질타했다. 그러면서 “적극적으로 일을 하려다가 실수하거나 잘못되면 책임을 묻지 않겠다”며 적극적인 자세를 주문했다.

공무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 경제위기 극복도, 개혁도 어렵다고 대통령은 판단한 듯하다. 하지만 일선 공무원들은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하며 앞장서서 일을 하려 하지 않는 모습이다.

한 전직 고위공무원은 “대통령 말만 믿고 나섰다가 잘못되면 대통령보다 더 무서운 여론과 야당의 공세에 희생될 수 있다”며 몸을 사렸다. 그는 또 “정권이 바뀐 다음에 책임추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공무원들은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관가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작업에 앞장섰다가 옥살이를 치른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을 보면 적극적인 정책을 펴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는 얘기도 나돈다. 그는 현대차 로비와 관련해 유죄를 선고받았다가 최근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로 판결이 뒤집혀 석방됐다.

이번 용산 참사 사건을 계기로 많은 공무원들이 ‘복지부동(伏地不動)’이 최고라는 생각을 갖게 되지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김기현 정치부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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