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임성호]실천만 남은 국회개선안

  • 입력 2009년 1월 15일 03시 01분


자기의 못된 행태가 부메랑이 되어 자기를 겨냥하는 것일까. 오늘날 국회는 최악의 불신 대상이다. 저잣거리의 거의 모든 사람이 국회를 욕하고 골목의 초등학생조차 국회의원을 조롱한다. 의원으로서는 섭섭하거나 억울할지 모르지만 당연한 일이다. 의원도 대부분이 남을 매도하거나 불신하고 무시하지 않는가. 남을 존중하지 않는 의원이 남에게서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은 인과응보이다.

망가진 국회 고치는 처방전 기대

물론 의원이 모든 사람을 배척하지는 않는다. 당이나 계파의 지도부 혹은 실세의 지시는 너무도 획일적으로 따른다. 표를 행사하는 지역구민이 무리한 요구를 해도 들어주는 척이라도 하느라 바쁘다. 그러나 남, 자기 이익에 직결되지 않는 남, 특히 생각이나 처지 및 이해관계가 다른 남에 대해서는 의원 중 상당수가 존중의 미덕을 잊은 듯하다. 남이 의원에게 비판적일 때뿐만 아니라 그 나름대로 의견을 개진해도 생각이 다르면 의원은 곧 귀를 닫고 공격성을 발휘한다.

경쟁 당이나 계파의 정치인에게 가하는 험악한 말과 심지어 물리력은 국민을 자주 흥분상태로 몰며 국민건강을 해친다. 대정부질의나 국정감사를 할 때 행정부 관료에게 던지는 호통과 일방적 자기주장도 익숙한 풍경으로서 국민을 절망하게 한다. 자기 색깔과 맞지 않는 언론매체와 이념단체에 대해 쏟아내는 적개심은 사회갈등을 필요 이상으로 증폭시키며 국민을 양분시킨다.

상대에 대한 존중의 상실은 중립을 표방하는 순수 학자나 전문가에 대한 의원의 태도에도 곧잘 나타난다. 비정파적 전문적 조언을 각각의 정파 프리즘으로 왜곡해 보며 견해차가 있으면 그냥 무시하곤 한다. 현장에 있지 않아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교수나 연구원이 한가한 소리 한다며 비아냥대지 않으면 다행이다. 국회 공청회와 청문회, 그리고 자문회의와 국회 개최 세미나에서 제시된 수많은 전문적 의견 중에 의원이 진지하게 경청하고 실천에 옮기고자 노력한 내용은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이런 일이 12일 국회의장에게 제출한 국회운영제도개선 자문위원회의 보고서와 관련해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 이 자문위원회는 여야 5개 정당과 국회의장이 추천한 16명의 외부 전문가로 구성되어 4개월이 넘게 활동했다. 연구결과를 장문의 보고서에 정리했다. 망가진 국회를 고치는 데 기폭제가 될 수 있는 개선안을 담았다.

상시국회제, 운영위의 권한 강화, 교섭단체 구성요건 완화, 의장의 권한 강화, 체계적 의사규칙 제정, 상시 국정감사, 상임위원회 차원의 국정조사, 복수상임위 겸임제, 상설소위원회 구성 의무화, 청문회 활성화, 법사위의 권한 약화, 예산결산특위의 상임위 전환, 의원 윤리 징계의 요건 완화, 국회와 감사원의 기능 연계 강화…. 하나하나가 다 큰 의미를 지닌 개선안을 망라했다. 각각의 장단점은 있지만 기본 방향은 공감을 자아낸다.

외부 전문가 조언 존중해줬으면

일하는 국회, 생산하는 국회, 국민을 위하는 국회 등 제도 개선의 취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의원의 일방적 태도를 막고 남을 존중하는 자세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선안을 잘 실천한다면 의원이 의정활동 시 자기 고집만 부리며 버티기 힘들어지고 이해관계가 다른 남과도 협조와 존중의 분위기를 자연스레 만들기 쉬워질 수 있다.

구색용 자문위원회를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요즘처럼 국회가 정상을 벗어나 불신을 받을수록 외부 전문가의 조언을 존중해야 한다. 내부에서 고칠 수 없을 때 외부의 힘에 의존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당의 추천을 받은 외부 전문가들이 힘을 합해 만든 국회제도 개선안이므로 의원들은 진지하게 토의, 평가해 필요한 내용부터 빨리 실천해야 한다. 회복이 가능할지 의심스러운 국회를 살리는 길이다.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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