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광표]세종대왕像을 위하여

  • 입력 2009년 1월 14일 03시 02분


그동안 참 말도 많았다.

“무인인 이순신 장군상은 박정희 군사정권의 산물이니 없어져야 한다. 세종로에는 세종대왕 동상이 있어야 한다.”

“이순신 장군상은 1968년부터 세종로를 지켜왔다. 서울의 대표 상징물을 일방적으로 옮기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잊혀질 만하면 터져 나온 논란이었다. 특히 서울시가 2003년 세종로에 광화문광장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이후 논란은 더욱 뜨거웠다.

저마다 의견이 분분했고 서울시의 계획은 수차례 벽에 부닥쳤다. 이처럼 난처한 상황에서 가장 무난한 돌파구는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는 것이었다.

이순신 장군상을 그대로 둘 것인지, 이순신 장군상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세종대왕상을 세울 것인지, 아니면 이순신 장군상은 그대로 두고 근처에 세종대왕상을 추가로 세울 것인지. 시민들은 세 번째 안, 둘 다 세우자는 안에 손을 들어주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올여름 완공되는 서울 광화문광장에 이순신 장군상과 함께 세종대왕상을 추가 설치하기로 최근 결론을 내렸다. 여론조사 결과에 근거한 것이었지만 실은 절충안이자 고육책이었다.

그러나 논란이 완전히 끝났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어느 집단이 나서 또 다른 역사적 인물상을 세우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면, 논란이 재개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실제로 요즘 세종로에 고종황제 동상을 세우자는 의견을 전파하는 사람도 있다.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의 인물상을 놓고 논란을 벌이는 것은 건강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과도하게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2007년 5만 원권과 10만 원권 화폐의 도안 인물을 선정할 때도 그랬다. 일부 단체는 현수막을 들고 거리에 나서 신사임당, 유관순, 정약용, 김구 등 역사적 인물에 대한 찬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의견을 내는 것이야 좋지만 자신들만의 생각을 강요하는 지나친 행위로 지적받았다.

이제 세종로 광화문광장에선 이 같은 자기 집착은 없어야 한다. 그 대신 어떻게 하면 멋진 세종대왕상을 만들 것인지를 놓고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서울시는 “세종대왕상을 앉은 모습으로 할 것인지, 서 있는 모습으로 할 것인지 자문회의를 구성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머릿속으로 세종대왕상을 상상해 본다. 앉은 모습이라면, 근엄하게 용상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 모습이 아닐까. 서울 덕수궁이나 여의도공원에 있는 세종대왕상과 너무나 흡사하다. 서 있는 모습이라면, 한 손을 들고 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이 아닐까. 그동안 보아온 인물상과 너무나 흡사하다.

우리 주변 곳곳에 많은 역사적 인물상이 있지만 그 모양이 그 모양이다. 지나치게 근엄한 데다 자세나 표정도 상투적이다.

광화문광장에 들어서는 세종대왕상은 좀 더 참신하고 생동감 넘쳤으면 좋겠다. 한글 창제를 위해 고뇌하는 모습이어도 좋고, 과학자 장영실과 토론하는 모습이어도 좋다. 품격을 유지하면서도 젊고 세련된 모습의 세종대왕상, 역사적 전통적이면서도 모던한 분위기의 세종대왕상을 만나고 싶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새로운 발상과 디자인을 놓고 또 논란이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렵기에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 서울 도심에서 늘 새롭게 살아 숨쉬는 세종대왕상을 만날 수 있다는 것, 그건 가슴 설레는 일이다.

이광표 사회부 차장 kp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