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윤종구]변했지만 변치않은 일본

  • 입력 2009년 1월 12일 02시 58분


도쿄 전철을 탔다. 게이오(慶應)대 1년 연수를 끝낸 2004년 3월 이후 거의 5년 만이다.

그런데, 전철 안이 시끄럽다. 왁자지껄한 정도는 아니지만 제법 큰 소리로 떠드는 중년 부부도 심심찮게 볼 수 있고 길거리에서처럼 대화하는 젊은이도 적지 않다. 끊임없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날리는 사람이 눈에 띄게 많아진 반면 책 읽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다리를 꼬고 앉은 사람이 더러 있는 것도 달라진 풍경이다.

5년 전의 도쿄 전철은 너무 조용해 서 있기가 어색할 정도였다. 일행과 함께 탔을 때는 줄곧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해 불편하기도 했다. 그때 도쿄에서 자동차 경적을 들은 게 1년 동안 딱 한 번이었다면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 조용한 도쿄가 마음에 들었다.

그때에도 전철 안에서 책 읽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옴 진리교 사건이 터진 이후로 전철의 독서 풍경이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를 일본의 지인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5년 후인 지금은 그때보다 책 읽는 사람이 훨씬 적은 것 같다.

일본 하면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배려’다. 상대방에게 폐 끼치는 것을 무엇보다 경계한다.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교육받는다. 그러나 일본 사회에서도 ‘배려’보다는 ‘개인’의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는 것 같다.

어딜 가나 마스크를 한 사람이 유난히 많은 것을 보고 놀랐다. 처음엔 ‘다른 사람에게 감기 옮길까 조심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사히신문의 한 기자는 “대부분의 마스크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감기 바이러스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좀 과장하자면, 마스크가 배려에서 개인으로 이동하는 상징처럼 느껴졌다.

가까운 친구에게 전화할 때에도 미리 문자메시지로 “지금 전화해도 돼”라고 물어 승낙을 얻은 후에야 비로소 번호를 누르는 풍경도 흔해졌다. 일반인들의 명함에 대부분 휴대전화 번호가 없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생활의 존중이라기보다는 개인주의의 벽이 높아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5년간,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었다.

일본에 온 지 거의 한 달 만에 집에 인터넷과 유선전화가 설치됐다. 한국으로 돌아간 특파원 전임자는 하루 만에 인터넷이 설치됐다는데….

집을 얻을 때의 불합리와 불편도 그대로였다. 집주인은 벽에 못을 박거나 벽지와 마룻바닥에 상처를 내면 돈으로 물어내야 한다고 했다. 애완동물 사육과 흡연, 저녁 9시 이후 피아노 연주 등이 적발되면 퇴거 조치될 수 있다고도 했다. 아무리 집을 깨끗하게 쓰더라도 이사 나갈 때 전문 청소업자를 부르는 비용은 세입자 부담이라는 조항도 있었다.

임차료 외에 월세 한두 달 치의 사례금을 추가로 주어야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약자인 세입자에겐 굴욕적이라고 할 만한 관행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도쿄가 미군의 공습으로 잿더미가 되면서 집을 구하기가 어려웠을 당시 ‘집을 빌려줘서 고맙습니다’란 뜻으로 사례금을 줬던 관행이 60년 넘게 유지되고 있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반(反)서민’ 관행이다.

지하철을 타거나 지하 1층 음식점에만 가도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러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뒤탈 없이 확실하게 하고, 언제 어디서나 안전하고, 속고 속이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다는 점 또한 5년 전과 매한가지다. 가까우면서도 먼 일본, 같아 보이지만 전혀 다른 일본인이다.

또 하나 달라지지 않은 게 있다면, 여전히 우리보다 더 잘산다는 점이다.

무엇이 오늘의 일본을 있게 했는지, 일본의 힘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그들의 일상 속에서 찾아보고 싶다.

윤종구 도쿄 특파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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