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무엇을 해야 할것인가]<5>금융시장안정시킬 방법은

  • 입력 2009년 1월 6일 03시 02분


은행 체력키우고 정부 보증늘려 ‘묶인 돈’ 돌게 하라

CP매입 등 파격조치로 시중 ‘돈가뭄’ 해소해야

은행채 발행 선진국의 2배… 자금조달 다양화를

PF대출 부실 제2금융권, M&A 등 구조조정 시급

#1. 의류업체를 경영하는 A(52) 씨는 지난해 말 만기가 돌아온 5억 원짜리 어음을 막지 못해 1차 부도를 냈다. 평소에 만기 연장을 잘해주던 은행이 갑자기 상환을 요구해 현금을 융통하기 어려웠던 것. 급전을 구해 최종 부도는 면했지만 은행이 자금줄을 죄고 있어 여전히 불안하다.

#2. 서울에 사는 B(40) 씨는 지난해 10월 대부중개업체를 통해 2금융권에서 1300만 원을 빌렸다. 이자도 비쌌지만 대출금의 20%인 260만 원을 수수료 명목으로 대부중개업체에 줘야 했다. 중개수수료를 떼는 건 불법이지만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었던 B 씨로선 달리 방법이 없었다.

한국은행이 댐을 열어 저수지(시중은행)에 아무리 많은 돈을 내려 보내도 저수지에서 논이나 밭(기업과 가계)에 돈을 흘려보내지 않는 ‘돈맥 경화’ 현상이 심해지면서 기업과 개인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돈맥 경화는 ‘가계 파산과 기업 도산→자금시장 불안 고조→예금 및 펀드 해지→대출금 회수→금융시스템 혼란’이라는 악순환의 도화선 역할을 한다. 올해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기 위해선 금융이 본래의 중개(仲介) 기능을 회복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 보증 늘려 막힌 ‘돈맥’ 뚫어야

지금 은행 금고에는 여윳돈이 쌓여 있다. 이달 2일 한국은행이 실시한 환매조건부채권(RP·한은이 되사주는 것을 조건으로 파는 채권) 입찰 상황을 보면 여유자금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이날 은행의 RP 매입 신청금액은 총 39조9000억 원. 한은은 신청금액이 너무 많다고 판단해 RP를 13조 원어치만 팔고 27조 원에 이르는 나머지 금액은 은행으로 돌려보냈다.

이처럼 은행들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떨어뜨리는 대출을 기피하는 대신 돈을 떼일 염려가 없는 안전한 곳에만 자금을 굴리려 한다.

이 때문에 작년 3분기(7∼9월) 기준 금융회사가 시중에 푼 자금은 총 52조 원으로 지난해 2분기에 비해 23조9000억 원(31.5%)이나 감소했다.

시중에 돈이 돌지 않다 보니 통화 한 단위가 거래를 위해 사용된 횟수인 통화유통속도가 2007년 3분기 0.752에서 2008년 3분기 0.703으로 뚝 떨어졌다. 돈이 돌지 않고 한 곳에 오래 머무르고 있다는 의미다.

자금을 구하기 힘들어진 지방 기업의 어음 부도율은 2008년 11월 기준 0.14%로 같은 해 1월에 비해 0.05%포인트 높아졌다.

전문가들은 돈맥 경화 현상을 풀려면 △보증여력 확대 △금리 인하 △중앙은행의 기업어음 매입 △총액대출 한도 확대 같은 파격적이고도 획기적인 유동성 확대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의 자본을 10조 원 정도로 대폭 늘리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기금이 보유한 자본의 10배까지 대출이 가능한 만큼 시중 유동성이 100조 원까지 늘어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 은행, 기본으로 돌아가야

돈이 흐르는 파이프를 뚫는 것 못지않게 은행의 자금조달 방식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다.

현재 은행들은 대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예금이나 적금 수신 △은행채 발행 △양도성예금증서(CD) 발행 △RP 매각 등의 방법을 쓴다.

문제는 은행채 발행 규모가 지난해 11월 말 기준 251조2000억 원으로 전체 조달금액(1131조3000억 원)의 22.2%에 이른다는 점이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 은행들은 전체 조달금액 대비 은행채 발행액 비율이 10%에도 못 미친다.

은행이 은행채에 너무 많이 의존하면 채권시장과 대출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우선 한국처럼 채권시장이 취약한 상황에서 은행채가 시장에 쏟아지면 채권금리가 전반적으로 상승한다. 은행이 자금시장에서 돈을 쓸어가 버리면 기업들은 그만큼 채권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지고 조달금리도 올라간다.

이런 단점 때문에 금융감독원은 최근 일부 은행에 은행채 발행 비중을 점진적으로 축소토록 권고하는 한편 자산유동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금을 조달하도록 했다.

○ ‘위기의 2금융권’ 선제적 관리 필요

상호저축은행, 캐피털회사 등 2금융권은 재무건전성이 나빠지고 있어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저축은행의 BIS 비율은 2007년 6월 말까지만 해도 9.93%로 양호한 편이었지만 작년 6월 말에는 9.42%로 하락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증가로 위험가중자산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PF대출 연체율은 작년 6월 말 14.3%로 2007년 6월 말보다 2.9%포인트 상승했다. 건설경기 부진으로 대출금을 못 갚는 건설사가 많아진 탓이다. PF대출이 부실해지면서 저축은행의 전체 연체율도 2007년 6월 말 13.7%에서 2008년 6월 말에는 14%로 높아졌다.

금융 전문가들은 2금융권의 부실이 전체 금융권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저축은행 간 인수합병(M&A)을 추진하고, 회사채 등급이 낮은 캐피털사와 카드사를 정리하는 선제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부실이 생긴 2금융권 업체에 시정을 요구한 뒤 부실이 여전한 곳을 선별해 문을 닫도록 하는 단계적 구조조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금융빅뱅’ 섣불리 시도 땐 시장 혼란▼

파생상품 쏟아져 대형사고 터질수도

자통법 내달 시행… 리스크 관리해야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이 다음 달부터 시행되면 증권사의 업무영역 확대를 통한 금융산업 경쟁력 제고, 자본시장 활성화 같은 순기능이 기대된다.

그러나 자통법은 금융사의 영업형태 변화와 업계 재편 등 시장의 큰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에 탄탄한 준비 없이는 자칫 금융불안 요소로 작용할 우려도 있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가 진행되는 와중에 ‘금융 빅뱅(Big Bang)’을 섣불리 시도하면 금융시장 혼란을 더 부추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은행은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 “자통법으로 대형 금융투자회사가 출현하면 외부 충격이 금융시스템 전체로 더 빠르고 크게 확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몸집이 큰 금융회사는 나름대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지만, 이들의 차입비율(레버리지) 등에 대한 금융당국의 감독이 미흡하면 미국발(發) 금융위기 같은 대형사고가 터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증권사들도 은행처럼 지급결제 업무를 할 수 있게 되면 은행권 자금이 자본시장으로 이동하는 머니 무브(money move) 현상이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작년에 겪은 것처럼 이는 은행의 건전성을 악화시켜 돈을 풀어도 돈이 돌지 않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 지급결제 시스템 자체의 안정성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부분은 새로운 파생상품의 출현이다. 지난해 불거진 통화옵션상품 키코(KIKO) 사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당국과 금융회사들이 앞으로 쏟아질 수많은 신종 금융상품을 일일이 감독하거나 리스크를 관리할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대신증권 구희진 리서치센터장은 “증권사들의 자기자본투자(PI)나 투자은행(IB) 업무가 늘어날 수 있는데 새로운 상품을 만들거나 안해본 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리스크 관리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투자자 보호 규정을 손질하는 한편 금융회사 및 다양한 파생상품에 대해 적정한 규제체계를 서둘러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자통법을 만들 때와 지금의 상황이 다른 만큼 금융계에서 새로운 IB 모델에 대한 합의를 이루는 것도 시스템 안정을 위해 필요한 과제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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