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통령의 약속, 民生현장서 通해야 의미 있다

  • 입력 2009년 1월 3일 02시 56분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신년 연설에서 집권 2년차의 국정운영 방향으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비상경제정부’ 운영을 선언했다. 이 대통령은 예년보다 보름 이상 빠른 신년 벽두의 국정연설에서 “1분 1초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며 경제 살리기에 매진할 것을 국민 앞에서 다짐했다.

이 대통령은 연설 도중 ‘위기’라는 단어를 29차례나 사용했다. 각 사회주체가 위기를 기회로 삼아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방향진단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고 우리는 본다. 이 대통령이 다양한 계층의 요구에 부합하는 여러 정책을 소상히 소개하며 ‘따뜻한 국정’을 펼치겠다는 소신을 밝힌 대목도 그 진정성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통령의 약속이 실천 가능하려면 단순히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가 중요하다.

대통령이 제시한 희망 섞인 목표들은 차가운 어둠 속을 헤매는 국민에게 정신적 위안은 될지 모른다. 하지만 현장에 적응하는 생명력을 가진 정책으로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신을 신고 발바닥을 긁는 격화소양(隔靴搔양)에 지나지 않는다. 4대 강 살리기를 통한 28만 개 일자리 창출, 녹색성장산업 육성 계획도 구체적이고 치밀한 프로그램과 실행력이 담보돼야만 경제위기 극복의 견인차가 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위기 극복을 위해 국민에게 자기희생과 자발적 참여를 요구했다. 하지만 대통령과 정부부터 구체적인 자기희생의 방법과 쇄신 의지를 보여주는 솔선수범 방안을 내놓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대통령이 제시한 비상경제정부 구상만 해도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진용이 중요하다. 기존 내각의 멤버들을 소집해 조언을 듣는 경제대책회의 정도라면 호랑이를 기대했던 국민 앞에 고양이를 내놓는 격이 되고 만다.

2009년을 맞아 새 각오로 출발하는 비상경제정부가 성공을 거두려면 구체적이고 신속하고 적확한 정책수단을 통해 민간부문에 에너지를 파급시킬 팀을 짜야 한다. 시장에서 약발이 먹히는 정책 효과를 내려면 관료나 교수 출신만으로는 부족하며 수출 기업 금융 등 경제현장에 통달한 인물들이 보강돼야 한다. 현장을 제대로 아는 인물이 없다 보니 대통령이 강조하는 것조차 현장에서 시행되지 않는 정책실패가 생긴다. 이 점에서 현장의 실무경험이 풍부한 미국 백악관의 경제자문회의 구성을 참고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은 연설에서 “시장에 돈이 돌게 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지금까지 정부가 은행에 20조 원 이상을 지원했음에도 기업과 가계에는 돈이 돌지 않고 있다. 투자확대를 위한 감세와 규제개혁, 의료 관광 교육 금융 등 고부가 서비스산업 육성도 이 대통령 취임 전부터 여러 차례 들어온 얘기다. 좌파세력의 다리걸기와 이해집단의 반대를 돌파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할 뿐이다. 정책이 국민의 삶 속에 스며들게 하려면 정부가 현장상황을 꼼꼼히 챙겨야 한다. 뭉게구름이 아무리 하늘을 덮어도 빗방울을 뿌리지 않으면 가뭄은 해소되지 않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경제위기 극복에 국회의 신속한 법안 처리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경제가 어렵고 정치가 이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시대일수록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여야를 넘나드는 정치력과 리더십이 절실하다. 중점처리 대상 법안의 필요성과 시급성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야당의 협조를 구하는 설득 작업은 대통령의 주요한 역할이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우리의 역량과 의지를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하는 외국 기관과 학자의 진단도 나오고 있다. 비관은 금물이다. 비상경제정부가 내놓는 구체적인 액션플랜과 빈틈없는 후속조치가 시장에 속속들이 파고들어야 경제위기의 격랑을 이겨내고 성공한 정부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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