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윤종]작지만 큰 노숙인의 기부손길

  • 입력 2008년 12월 26일 02시 57분


“나도 어렵지만 더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었을 뿐입니다.”

40대 김모 씨는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낸 뒤 이렇게 말했다. 그는 노숙인이다. 처지로 보면 오히려 도움을 요청해야 할 상황이다.

김 씨가 사는 인천 계산동 노숙인 쉼터의 노숙인들은 인근 북성동 인현동 만석동 내 쪽방촌 주민 등 인천 지역 취약계층 주민 300여 명과 함께 26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성금 65만 원을 전달할 예정이다.

노숙을 하거나 한 평 남짓한 단칸방에 살고, 끼니를 해결할 돈이 없어 무료급식소를 이용해야만 하는 이들은 이달 초 ‘어렵지만 우리도 작은 힘을 보태자’는 마음으로 자발적인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모금은 각종 봉사단체에서 보내온 쌀과 김치를 나누던 중 ‘도움만 받으며 살았는데 우리도 남을 돕고 싶다’는 의견이 모아지면서 시작됐다.

노숙인 쉼터, 노인 무료급식소에 모금함을 두고 모금 캠페인을 펼치는 한편 폐지를 팔거나 굴을 까서 번 하루 일당을 조금씩 기부해 성금을 모았다.

사상 최악의 경기침체라는 올해는 이들처럼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려는 손길이 더욱 많아지고 있다.

2평 남짓한 구둣방을 운영하는 박재도(66·제주 제주시 노형동) 씨는 최근 성금 20만 원을 기탁했다. 구두 한 켤레를 닦고 받는 잔돈 100원, 500원을 모은 것이다.

박 씨는 “성금을 내는 것을 잊기 않기 위해 좁은 구둣방에서도 가장 잘 보이는 선반에 꿀단지를 놓고 틈틈이 동전을 모았다”고 말했다.

뇌병변 장애2급으로 춘천교도소에 수감 중인 익명의 재소자는 최근 “어려운 이웃에게 힘과 용기로 전해지길 바란다”는 편지와 함께 10만 원을 공동모금회 계좌에 넣었다.

모금단체들은 “경기침체로 기업 기부는 주춤하지만 소액기부 등으로 남을 돕겠다는 개인들은 늘었다”고 말한다.

공동모금회에 따르면 한 번 통화로 2000원을 기부하는 ARS(060-700-1212) 접속 수는 지난해 7만7973건에서 올해 14만5767건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24일 자선냄비 모금을 마감한 구세군에 따르면 올해는 유가환급금 전액을 기부하거나 교통카드를 이용해 성금을 전달한 시민이 많았다고 한다.

삶이 너무 팍팍하고 좀처럼 풀리는 일이 없는 이번 연말. 그래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도우려는 우리 이웃의 온정이 삶에 대한 희망의 빛을 비춰주고 있다.

김윤종 교육생활부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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