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유럽에서 배운다]<4·끝>무상의료시스템 운영 영국

입력 2008-12-15 03:01수정 2009-09-23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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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의 한 개인의원에서 의사가 어린이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영국 사람들은 모두 의무적으로 1차 의원인 GP에 등록해야 하며 여기를 거쳐야 큰 병원에 갈 수 있다. 사진 제공 영국PCT
《런던에 사는 30대 중반의 트래비스 씨는 최근 둘째아이를 얻었다. 그의 아내는 임신 중반에 태아의 박동이 약하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다. 진단 직후 아내는 큰 병원에 가서 기형아 검사, 혈액검사 등을 받았다. 검사비는 모두 무료였다. 트래비스 씨는 아내의 출산을 앞두고 진통이 시작되자 즉각 집으로 응급차를 불렀다. 응급차가 도착하기도 전에 근처에 있던 응급요원이 먼저 와서 조치를 취했다. 아내는 자연분만이 어려워 제왕절개수술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수술 후 회복을 위해 2인실을 내줬다. 이 역시 모두 무료였다. 트래비스 씨는 “퇴원 후에도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아내를 찾아와 건강을 체크해줬다”며 “아내의 임신과 출산을 거치면서 진료비는 거의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모든 진료비 무료… 정부가 의료보험 총괄

○ 건강보험공단 따로 없어

영국에서는 환자가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도 돈을 내지 않는다. 모든 진료비를 국가에서 부담하기 때문이다.

암 수술이나 장기 입원치료도 무료다. 치과, 안과 등 일부 진료 과에서만 환자가 진료비를 부담한다. 이 경우에도 아이, 임산부, 저소득층, 노인은 무료다.

영국은 1946년 무상의료서비스(NHS)를 시작한 후 60년 이상 무상진료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가 모든 의료보험업무를 총괄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공단 같은 기관도 없다. 다만 지역별로 우리의 보건소와 비슷한 ‘1차 의료연합(PCT)’이란 기구가 있어 병의원을 관리한다. 모든 의료재정은 세금에서 충당한다. 그 때문에 의료보험료를 따로 내지 않는다. 영국의 세금 수준은 우리나라보다 2, 3배 높다. 많은 돈을 세금으로 거둬들여 그중 일부를 의료서비스에 쓰고 있다.

○ 동네의원에서 1차 진료 거쳐야

무상의료라고 하면 조금이라도 아프면 병원을 갈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럴 수 없다. 응급환자를 제외한 거의 모든 환자는 우리로 치면 동네의원인 일반의(GP·General Practitioner)를 반드시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 GP제도가 무상의료시스템의 핵심이다.

런던 지역 PCT의 이사인 살만 라와프 런던대 교수는 “GP제도는 영국 무상의료 서비스의 핵심”이라며 “이 제도를 통해 1차 의료를 강화하면 의료비 예산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의료서비스 남용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에 사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GP를 지정해야 한다. 질병과 관련한 상담과 치료는 GP를 먼저 거쳐야 한다. 주치의 제도와 마찬가지로 GP는 사전 예약을 해야 만날 수 있다. GP는 번화한 도심보다 동네 주택가 곳곳에 흩어져 있다. 간판이 없는 경우가 많아 그 GP에 등록된 환자가 아니면 의원이 있다는 사실을 모를 수도 있다.

프랑스에서는 의사라면 누구나 주치의가 될 수 있는 데 비해 영국에서는 GP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정해져 있다. 영국 의대는 전문의 과정과 GP 과정이 분리돼 있다. 의대생은 두 과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만약 전문의 과정을 선택했다면 GP가 될 수 없다. 반대로 GP는 일반 병원에서 진료할 수 없다.

영국 전체 의사의 50%가 GP로 활동하고 있으며 GP 1명당 약 1800명의 환자를 담당하고 있다.

○ 예약 시스템 개선 주력

영국에서 큰 병원에 가려면 GP의 진료의뢰서가 있어야 한다. 보통 매년 GP를 이용한 환자의 10%가 큰 병원으로 간다. 큰 병원으로 간 환자의 10%는 다시 암이나 중증질환 전문병원으로 이송된다. 모든 환자의 90%가 GP 선에서 진료를 끝내는 것이다.

라와프 교수는 “지난해 영국 정부가 지출한 의료비 1100억 파운드 중에서 1차 의료비 비중은 20%에 불과하다”며 “1차 의료비를 줄일 수 있으므로 중대 질환에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다”고 말했다.

무상의료시스템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특히 현지에서 살다 온 한국인들은 “대기시간이 길고 진료의 질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최근 런던에서 2년간 연수를 끝내고 귀국한 중앙정부 공무원 정모 씨는 “치과 의사가 성심껏 진료하지 않아 결국 한국에 돌아와 다시 치료를 받았다”며 “서비스 수준은 만족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사회정책 전문가인 영국 요크대 김보영 박사는 “한국의 병원은 워낙 고가의 첨단의료장비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영국의 진료품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영국인들은 자국의 진료 서비스에 대해 큰 불만이 없다”고 말했다.

라와프 교수는 “최근 영국의 병원은 환자가 이틀 이내에 의사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예약 시스템을 개선하고 있기 때문에 대기시간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런던=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유럽 의료시스템 한국과의 차이는

취재를 위해 찾았던 유럽의 병원들은 매우 한산한 편이었다. 한국 병원처럼 복도에서 기다리는 환자를 거의 볼 수 없었고 의사도 여유로워 보였다. 이런 풍경은 영국, 독일, 프랑스, 스위스 병원 모두 마찬가지였다.

독일 의사에게 “왜 이렇게 환자가 없느냐”고 묻자 그는 오히려 이런 질문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환자들이 왜 복도에서 기다리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1차 의원에서 대부분의 환자를 보기 때문에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는 사전예약을 통해 정해진 날짜에 진료를 받으면 된다”고 말했다.

유럽의 의료서비스 이용 행태는 우리나라와 많이 다르다.

우리는 조금만 아파도 큰 병원부터 찾는다. 동네 의원은 환자가 없어 고민이지만 큰 병원은 환자가 너무 많아 제대로 진료를 받기도 힘들다.

현재 국내 건강보험 재정의 10%는 감기 등 가벼운 질환에 쓰이고 있다. 기침만 하면 병·의원을 찾는 습관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가벼운 질환에 들어가는 재정만 줄여도 암과 같은 중증질환자에게 돌아갈 혜택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한다.

한 프랑스 의사는 “가급적 병원에 안 가는 것이 좋은 것 아니냐”며 “프랑스 사람들은 수술 후 빨리 퇴원해 집에서 요양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독일 의사도 이와 비슷한 지적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의사가 퇴원하라고 해도 “아직 불안하니 조금만 더 입원해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환자가 적지 않다. 일부 병원은 입원 진료비 수입을 위해 환자의 병이 다 나아도 제때 퇴원시키지 않기도 한다.

유럽과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는 보험료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취재 대상 4개국은 우리나라보다 2, 3배 많은 의료보험료나 세금을 내고 있다. 민영보험 체제로 운영되는 스위스는 진료비가 너무 비싸 중산층의 보험료 부담이 크다. 스위스 사람들은 병원을 자주 가지 않더라도 비싼 보험료를 감수하고 있다. 자신이나 가족이 언제 큰 병에 걸릴지 모르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투자로 여기고 있다.

유럽의 의료체계를 우리나라와 단순 비교해 유럽 체계가 낫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높은 보험료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룬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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