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동성]경제위기, 선진화 기회로

  • 입력 2008년 12월 13일 02시 58분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 탓인지 감기로 고생하고 있다. 기침이 멈추지 않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목이 쉬었다. 약속해둔 강의를 취소하기 어려워서 강행했다. 두 시간 동안 정신없이 강의를 한 후 자리에 앉으니 강의하는 동안 한 번도 안 했던 기침이 다시 쏟아졌다. 가냘픈 어머니가 아기를 친 자동차를 두 손으로 번쩍 든 사건을 신문에서 본 기억이 난다. 6·25전쟁 때 사방에 포탄이 떨어지는데 서울에서 남쪽으로 걸어가던 피란민 중 큰 병에 걸린 사람은 별로 없었다고 한다. 이렇듯 우리 몸에는 위기를 극복하는 초인적 능력이 살아있다.

우리국민 멸사봉공 전통 살리길

사회 속의 인간도 마찬가지다. 평온할 때에는 작은 이슈를 가지고도 티격태격하던 사람들이 외부적인 위기가 발생하면 똘똘 뭉쳐 난관을 극복한다. 우리나라 기업에도 최근 구성원들이 새로운 자세를 보이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크게 높아졌다는 조사결과가 이틀 전 발표됐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0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제조업 근로자 의식’ 조사에서 78%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보람과 긍지를 느낀다’고 밝혔다고 한다. 4년 전 같은 조사에서는 40%만이 애사심을 가졌던 데 비해 현저하게 늘어난 수치다. 근로에 대한 가치관도 달라졌다. ‘열심히 일하면 잘살 수 있다’는 견해에 대해 4년 전에는 34%만 동의했으나 이번에는 77%가 동의했다.

인간은 이기적 동물이라는 전제하에 이 조사결과를 판단하면 최근의 경제위기와 실업 공포가 근로자의 의식을 바꿔 놓았다고 풀이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가진 위기대처 능력을 믿는다면 위기 속에서도 힘을 합치면 우리 회사는 살아날 수 있다는 긍정적 사고가 애사심으로 나타났으리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우리는 자신을 희생해서 국가를 살려내려는 마음을 가진 위대한 민족이다. 일본이 강요한 을사늑약의 구실이었던 당시 돈 1300만 원의 국채를 갚기 위해 온 백성이 떨쳐 일어난 1907년의 국채보상운동, 경제위기 아래서 30억 달러의 외채를 갚기 위해 349만 명이 동참한 1997년의 금 모으기 운동은 조직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불사할 수 있다는 한국인의 독특한 유전자(DNA)를 보여준 쾌거이다.

어떤 나라든지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네 개의 산을 넘어야 한다. 양적 성장, 질적 심화, 가치창출, 의식개혁이다. 경제 발전을 시작한 1960년대 이후 우리는 경제위기를 세 차례 맞이했고 성공적으로 극복하면서 세 개의 산을 넘었다. 1973년에 일어난 제1차 석유위기 와중에서 우리 경제는 중동지역에서의 건설사업을 통해 양적으로 큰 성장을 이뤘다.

이기주의-타락한 윤리의식 버려야

1979년의 제2차 석유위기와 박정희 대통령 시해에 따른 경기침체 속에서 우리는 성장일변도 경제에서 성장과 안정을 동시에 추구하는 균형경제로 연착륙하는 질적 심화를 달성했다. 1997년 경제위기에서 기업의 불량 재무구조를 통해 확인한 가치창출능력 부재도 치열한 구조조정을 통해 극복했다.

이번에 닥친 경제위기는 선진화하기 위해 넘어야 하는 마지막 산, 즉 의식개혁을 이룰 절호의 기회다. 경기침체 위기는 1, 2년 안에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위기를 통해 사회에 팽배한 이기주의와 타락한 윤리의식을 척결해야 한다. 나만을 위한 행동이 사회에 끼치는 피해에 대해 무감각하던 자세를 버리고, 국가와 조직을 위해 나를 바치는 방향으로 의식을 개혁해야 한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는 우리 국민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확인해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위기는 우리를 선진사회로 이끌어줄 ‘숨은 축복(blessing in disguise)’이다.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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