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수사 적법절차의 중요성 일깨운 ‘36년 만의 무죄’

  • 입력 2008년 12월 1일 02시 59분


초등학생 강간살인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징역 15년을 산 정원섭(74) 씨가 36년 만의 재심(再審)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정 씨가 여자아이를 죽였다고 볼 만한 결정적인 증거가 없고, 경찰의 불범 감금과 고문 회유 같은 ‘위법한 수단’으로 얻은 자백은 증거능력이 없다는 이유다. 재심 재판부는 판결을 선고하면서 “신(神)과 진범 본인 외에는 누구도 진실을 알 수 없는 사건”이라고 밝혔다.

이 사건 재심은 적법한 수사절차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었다. 수사기관이 고문과 협박 등 가혹행위를 통해 피의자에게 자백을 받아냈다면 실체적 진실과 상관없이 유죄로 인정할 수 없다는 형사소송의 원칙을 재천명한 것이다.

36년 전의 유죄가 무죄로 바뀔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사법부의 독립으로 ‘위법한 수단’을 통해 받아낸 자백을 사법부가 증거로 인정하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아마 당시에 지금과 같은 DNA 분석 기술이 있었더라면 범인 여부를 정확히 가려내 억울한 피의자를 만드는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26년 전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징역 1∼7년을 선고받았던 군산 제일고 전현직 교사 9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지난주의 재심도 고문으로 인한 자백은 유죄의 증거가 될 수 없다는 확인이었다. 이른바 오송회 사건으로 불린 이 사건 관련자들은 당시 재판 과정에서 고문을 당해 허위자백했다고 호소했지만 독재정권 치하의 사법부는 듣지 않았다. 재심 재판부가 “억울한 옥살이로 인한 심적 고통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법원을 대신해 사죄드린다”고 할 정도라면 당시 수사와 재판이 얼마나 무리를 거듭했는지를 짐작할 만하다.

정 씨 사건과 오송회 사건은 모두 엄혹했던 독재시대의 유물이다. 수사와 재판에서 인권과 적법절차의 소중한 의미를 되새겨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 옥살이를 마쳤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재심을 관철시킨 두 사건 관련자들의 용기와 집념이 ‘법의 탈을 쓴 위법한 수사와 재판’을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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