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안순권]‘실물’ 살려야 위기 탈출

  • 입력 2008년 10월 21일 02시 59분


정부가 금융·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고강도 대책을 내놓았다. 은행이 내년 6월까지 해외에서 빌리는 외화 부채에 대해 1000억 달러 범위 내에서 3년간 정부가 지급보증을 하고, 300억 달러의 외화 유동성을 추가 공급하기로 했다. 또 한국은행이 국채 직매입, 통화안정증권 중도상환을 통해 긴급 원화자금을 공급해 원화 유동성 위기를 차단하도록 했다.

원화유동성 실효 거두려면

외화·원화 유동성 확충에 초점을 둔 이번 대책은 미국 유럽 등이 은행부문 국영화, 은행간 차입지급 보증 등의 초강력 조치를 잇달아 발표한 데 비하면 늦은 감은 있으나, 금융시장의 불안 심리를 해소하는 데는 상당한 효력이 기대된다. 그러나 이번 대책이 현재의 신용경색을 없애기는 부족하므로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은 미국의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 한 계속될 수밖에 없다. 원화 유동성 확대방안도 기준금리의 추가 인하, 총액대출한도 확대, 지급준비율 인하 등의 조치를 병행하지 않으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이번 대책의 맹점은 실물경제까지 아우르는 종합대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물경제 위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는 금융위기가 글로벌 실물경제 위축으로 이어지는 내년에 더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 의회는 1500억 달러 규모의 신 뉴딜정책 입안을 추진 중이고 유럽연합(EU)과 일본도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을 준비 중이다. 주요국은 동반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한 데 이어 추가 인하도 고려하고 있다.

우리도 금리를 더 내릴 필요가 있다. 다행히 국제유가가 많이 내려 물가상승 압력이 많이 약화되면서 금리인하의 여지는 크다. 환율은 이미 과도하게 상승하여 금리를 더 내린다고 변동성이 더 확대될 가능성은 적다. 세계적 경기침체에 따른 디플레이션 압력 증가로 재정정책의 유효성은 그만큼 커지고 있다.

세계경제의 침체로 내년 수출에 적신호가 켜진 만큼 내수확대로 활로를 열어야 한다. 지난 수년간 우리 경제는 내수가 구조적으로 위축됐다. 이번 기회에 내수의 성장기여도를 높이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서민과 중산층의 부담을 줄여주고 소비를 진작시키며 기업의 투자를 확대할 감세정책을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 소비부진의 가장 큰 원인인 고용불안을 해소할 유연안정성 제고방안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저소득층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적 일자리와 공공사업을 확대하고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도 늘려야 한다.

시급한 것은 부동산 및 건설업 대책 마련이다. 일부에서는 일본의 사례를 두고 건설업의 경기부양 역할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를 제기한다. 불황 탈출을 위해 깊은 산골짜기에 도로를 놓고 지역구의원의 민원해결을 위해 교통수요가 적은 데도 큰 다리를 여러 개 건설하는 등 투자 효율성이 낮은 공공사업을 지나치게 많이 추진하다가 경기상승효과를 일으키지 못하고 꺼져버렸던 1990년대 일본의 전철은 당연히 밟아서는 안 된다.

서민-중산층 감세로 내수확대를

그러나 우리는 일본보다 사회간접자본(SOC)의 질적 양적 성숙도가 크게 떨어지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건설 후 입장 수입료와 부대사업으로 흑자 경영이 가능한 프로야구 돔경기장, 해외관광객 유치용 문화 레저 시설을 건설하는 방안은 서비스산업 활성화와 여행수지 적자 개선, 문화대국 등의 정책 목표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경기침체의 충격에 따른 가계와 기업의 부실이 금융부실로 확산될 경우 한국경제의 대외신인도 저하로 이어져 외국 신용평가회사에 의한 국내 금융기관의 신용등급 하향조정이 벌어질 수 있다. 금융기관의 신용등급 하향조정은 대개 국가신용등급 하향조정으로 비화되곤 했다. 실물경제가 살아나야 진정한 외환·금융위기 탈출이 가능한 것이 한국경제의 현실이다.

안순권 한국경제연구원·경제연구본부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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