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李대통령, ‘경제 연설’ 신중해야

  • 입력 2008년 10월 10일 02시 58분


이명박 대통령은 이르면 13일 라디오 연설을 통해 환율 급등과 주가 급락 등 비상한 경제상황에 대한 생각을 국민 앞에 밝힐 것을 검토 중이다. 청와대가 추진 중인 대통령의 주례(週例) 라디오 연설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가칭)의 첫 회로 이 연설을 하면서 경제주체들의 협조를 구한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1930년대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했던 것처럼 노변담화(爐邊談話) 형식을 빌린 주례연설을 통해 앞으로 다른 현안도 직접 설명할 것이라고 한다.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이런 기회를 갖고자 하는 뜻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경제에 관한 연설은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지금 세계 금융시장은 전례 없는 충격에 휩싸여 있다. 주요국들이 금리 동시인하 등 공조 대응을 하고 있지만 금융 및 실물 양면에서 파고와 파장이 얼마나 더 높고 클지 누구도 단정적으로 예견하기 어렵다. 이 대통령이 막연한 말로 국민을 안심시키고 시장을 안정시키려 해서는 별 효험이 없을 것이다.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담는다 해도 연설 직후에 상황이 거꾸로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한두 달 사이만 보더라도 정부 당국자들의 발언은 적지 않게 빗나갔다. 이 대통령의 언급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펀드라도 사겠다고 한 뒤에 펀드 수익률은 크게 떨어졌다. 러시아 방문 중의 우리 시장에 대한 낙관론도 오래 못 가 무색해졌다. ‘경제는 심리’라는 말은 맞다. 정부로선 시장심리를 안정시킬 필요성을 절감할 것이다. 그러나 말이 많다 보면 실언도 늘어나고, 정부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증폭될 소지가 커진다. 지금의 국내 상황이 대체로 그렇다.

경제장관들이 신뢰를 잃고 있어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것이라면 이 또한 문제다. 대통령 연설이 잘되건 못되건 아랫사람들은 더 초라해질 것이다. 장관이 할 말을 대통령이 대신 하는 형국이 돼서는 나쁜 선례만 남고 경제운용의 질서는 무너진다. 대통령 연설 뒤의 상황이 악화되기라도 한다면 뒷감당이 더 어려워진다. 현재의 장관으로 안 되겠으면 차라리 바꾸는 게 맞다.

특별담화, 기자회견 등과 판이한 이번 연설 형식이 뒷말을 낳을지도 모른다. 청와대가 급박한 경제상황을 라디오 주례연설 시작의 기회로 삼은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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