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선 30분 걸릴 행정절차 한국서는 2시간 걸려”

  • 입력 2008년 9월 29일 03시 01분


제주에 모인 75개 외국계 투자기업조환익 KOTRA 사장이 26일 제주 서귀포시 신라호텔에서 열린 ‘외국인투자기업 제주 최고경영자(CEO) 포럼’에서 외국인투자기업 CEO 및 임원 90여 명을 대상으로 한국의 투자환경을 설명하고 있다. 이 행사는 한국에 이미 진출한 외국인투자기업들의 추가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 마련됐다. 사진 제공 KOTRA
제주에 모인 75개 외국계 투자기업
조환익 KOTRA 사장이 26일 제주 서귀포시 신라호텔에서 열린 ‘외국인투자기업 제주 최고경영자(CEO) 포럼’에서 외국인투자기업 CEO 및 임원 90여 명을 대상으로 한국의 투자환경을 설명하고 있다. 이 행사는 한국에 이미 진출한 외국인투자기업들의 추가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 마련됐다. 사진 제공 KOTRA
‘코리아 마케팅’ 포럼 외국社 CEO들 쓴소리

“담당자 찾기 힘들고 여러곳 돌아다녀야 해

비정상적 고임금 - 노사협상에 어려움 느껴

외국에는 없는 한국만의 법규제 개선해야”

포럼 참석기업 46.6% “향후 2, 3년내 한국투자 늘릴것”

“중국보다 한국에서 사업하는 게 더 힘든 것 같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20∼30분 걸려 해결될 일이 한국에서는 1∼2시간이나 걸리기도 합니다.”(얀 페이언 베르나바이오텍 아시아태평양담당 부사장)

26, 27일 이틀간 제주 서귀포시 신라호텔에서는 ‘외국인투자기업 제주 최고경영자(CEO) 포럼’이 열렸다. KOTRA와 지식경제부가 공동 주최한 이 행사에는 듀폰코리아, 다우코닝코리아, 아사히글라스, 베르나바이오텍 등 한국에 진출한 75개 외국계 투자기업의 CEO 및 임원 90여 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KOTRA와 주요 지방자치단체로부터 투자 환경을 설명 듣고 제주국제자유도시 건설 현장을 둘러봤다.

외국기업 임원들은 이번 포럼을 취재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 대한 투자 확대에 관심을 보이면서도 한국이 ‘외국인 투자유치 대국(大國)’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해야 할 일이 많다고 강조했다. 특히 행정 절차 간소화와 경직된 노사 관계 개선을 역설했다.

벨기에의 다국적 화학회사인 솔베이케미컬 앙드레 노통브 대표이사는 “한국은 교육 수준이 높지만, 그만큼 임금 수준이 비정상적으로 비싸고 노동조합과의 협상이 때로는 힘들다”며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네덜란드 제약업체인 베르나바이오텍의 페이언 부사장은 “담당자를 찾기가 힘들고, 담당자를 알게 되어도 여러 직급의 담당자를 동시에 접촉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며 “중앙부처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등 관련 기관을 여러 곳 다녀야 하며, 담당자를 만날 때도 비공식적인 일에 에너지를 할애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참석자들은 외국인 투자 유치와 관련된 행정 절차를 간소화하거나 외국투자기업 밀착 지원 서비스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KOTRA에 외국투자기업 고충을 처리해주는 전문가인 ‘홈닥터’가 있지만, 홈닥터 1명이 기업 수천 개를 전담하는 실정이다.

한국 사회가 좀 더 개방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구글 미국 본사의 카난 파슈파시 기술 부문 총책임자는 “한국은 얼리 어답터(신제품을 가장 빠르게 소비하는 집단)가 많아서 매력적인 시장”이라며 “이런 장점을 살리려면 정부부처가 특정 소프트웨어 사용을 고집하는 등의 ‘기술 장벽’을 없애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종훈 오티스엘리베이터 기업윤리 담당이사는 “외국에는 없는데 한국에만 존재하는 법이 적지 않다”며 “법률 체계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시공사가 엘리베이터 설치공사를 일정 물량 이상 엘리베이터 제조업체에 맡기면 하도급법에 걸려 위법이 되는데, 이는 시공사와 시행사가 따로 있는 현실과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번 행사는 지난해 한국의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치 순위가 세계 60위로 1년 전의 47위보다 13계단이나 하락한 가운데 신규 외자 유치 못지않게 기존 외국투자기업의 증액(增額) 투자를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마련됐다.

조환익 KOTRA 사장은 환영사에서 “외국인 투자 기업은 한국 경제에서 일자리 창출 등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면서 “한국은 인력이 우수하고 제조업이 강해서 매력적인 투자처가 될 수 있으며 ‘인베스트 프렌들리’(투자 친화적인)한 환경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박찬우 대전시 부시장은 “‘한국의 실리콘밸리’인 대전에 투자해 달라”며 “대덕 연구개발(R&D) 특구에는 90여 개 연구기관과 우수 인력이 많은데, 이런 연구 인프라가 외투기업과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KOTRA가 이번 행사 참석기업 75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46.6%인 35개사가 ‘앞으로 2∼3년 내에 한국에 대한 투자를 늘릴 것’이라고 답했다.

구글은 구글코리아의 자본금을 늘려 R&D를 강화할 계획이라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지경부 및 KOTRA와 맺었다. 워싱턴타임스항공도 미국 보잉사와 정밀유도 미사일의 항속 거리 연장 날개를 공동 개발하기 위해 한국에 3000만 달러를 추가 투자한다는 MOU를 체결했다.

서귀포=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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