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전승훈]‘방송법 공청회’ 또 무산시킨 언론노조

  • 입력 2008년 9월 10일 02시 56분


“사회자는 더 험한 꼴 당하기 전에 내려와라.” “공청회를 하려면 경찰을 동원해 우리를 끌어내고 해라.”

9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태평로 대한상공회의소 지하 2층 회의실. 방송통신위원회가 개최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공청회를 앞두고 전국언론노동조합 노조원 30여 명이 단상 앞을 점거했다. 이들은 ‘요식행위 공청회는 원천무효’라는 플래카드와 구호가 적힌 피켓, 마이크와 이동식 스피커까지 준비하고 공청회 실력 저지에 나섰다.

이날 공청회는 방통위가 7월 말 지상파 TV와 보도·종합편성 채널에 참여할 수 있는 대기업의 기준을 완화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한 방송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한 데 따른 의견수렴 차원이었다.

언론노조는 지난달 14일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공청회도 “패널 구성에 문제가 있다”며 무산시켰다. 언론노조측은 이번에는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해놓은 상태에서 열리는 공청회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며 반대했다.

사회를 맡은 유의선 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공청회 자체를 무산시키는 것은 민주주의에 맞지 않다. 이의가 있으면 공청회에서 충분히 시간을 줄 테니 의견을 개진해 달라”고 설득했다.

그러나 유 교수의 말에 언론노조 측은 “공청회 하지 말고 차라리 그냥 강행해라” “사회자는 빠져라” 등 고함과 욕설을 계속했다. 유 교수는 결국 1시간 반이 지난 후 “공청회를 진행하기 어렵다”며 폐회를 선언했다. 그러자 언론노조 관계자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고 “수고했다”며 서로를 격려하기도 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지난 공청회에서 패널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언론노조가 추천한 언론개혁시민연대 인사를 패널로 참여시켰는데, 또 다른 이유를 들어 무산시키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장에는 학계, 법조계, 시민단체 대표뿐 아니라 케이블, 위성방송,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등 방송 현업 관계자 300여 명이 방청석에서 의견을 개진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언론노조의 막무가내식 ‘떼쓰기’로 두 번씩이나 공청회가 무산되는 것을 보고 씁쓸한 표정으로 돌아서야 했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한 참석자는 “케이블, 위성, DMB 등 사업자마다 이해가 다르기 때문에 이번 공청회를 위해 만반의 준비

를 해왔다”며 “지상파TV 중심의 언론노조가 자기만의 의견을 강요하며 공론의 장을 무산시키는 것은 횡포”라고 말했다.

전승훈 문화부 raph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