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유병규]한국경제, 위기 속에 기회 있다

  • 입력 2008년 7월 18일 02시 53분


한국 경제는 위기 국면이다. 지금 당장 파국의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고유가와 경기 침체라는 여건을 여하히 헤쳐 나가느냐에 따라 앞날이 결정되는 아슬아슬한 고비라는 점에서 위기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지금은 외부 충격의 힘을 빌려 한국 경제의 고질적 문제점을 극복하고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국내 경제가 새로운 성장 가도로 진입하려면 마음의 조급증을 버려야 한다. 조급해지면 마음의 평정을 잃고 판단력이 흐려져 무리수를 둘 가능성이 높다. 마음만 급해 낭패를 본 대표적 사례가 1993년의 ‘신경제 100일 계획’이다. 모든 경기 부양책을 동원하여 반짝 경기가 살아나는 듯했으나 외환위기를 부르는 화근이 됐다. 지금은 누구라도 경제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없고, 또 바라지 않는다. 더는 공개적 인위적으로 환율을 조정하겠다는 강박증을 내비치지 말아야 한다.

마음의 냉정을 찾은 후에 할 일은 한국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다. 세계 경기가 회복되기까지 2년 동안은 힘들게 살 수밖에 없음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한국 경제는 생산성이 낮고 에너지 효율성이 선진국에 비해 훨씬 뒤떨어진 상태다. 낮은 생산성으로는 제품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힘들다. 특히 전량을 외국에서 수입하는 에너지 사용의 비효율성은 고유가 시대에 더는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에너지 과소비 체질 바꿔야

한국의 에너지 원단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두 배 수준이다. 일본에 비해서는 3배나 높다. 같은 생산물을 만드는 데 에너지 소비가 선진국보다 2, 3배나 많은 셈이다. 1970년대 유가 충격을 접한 일본은 임금 인상을 최대한 억제하고 거국적인 에너지 효율성 향상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생산성은 높아지고 에너지 원단위는 절반으로 축소됐다. 이후 일본은 1980년대 세계 최고의 산업 경쟁력을 지닌 국가로 급부상했다.

경기 부양책의 실효성이 약화된 이때에 또 힘써야 할 것은 성장 잠재력 확충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는 일이다.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은 소득 5000달러 시대부터 하락하기 시작해 지금은 1980년대의 절반 수준이다. 이대로 가면 고령화 등 경제 여건의 악화로 잠재 성장률이 0%대로 떨어질 수 있다.

한국의 성장 잠재력 약화는 경제 규모가 세계 13위로까지 불어난 체격에 비해 체력이 뒷받침되지 못한 데 근본 원인이 있다. 수출 완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소재부품 산업의 경쟁력이 취약하고 내수 부문의 성장이 미흡한 까닭이다. 완제품과 소재부품 산업 간, 수출과 내수 산업 간 상호 연관성이 취약하여 외형은 크지만 내실은 없다.

외화내빈 경제를 초래한 주범은 취약한 국내 기업 생태계다. 한국 기업 구조의 특징은 대기업 비중이 낮고, 중간 기업층이 엷으며, 소기업 비중이 너무 높은 첨탑 구조에 있다. 세계무대에서 수출품을 생산해 한국 경제를 이끌어갈 대기업도 부족하고 경쟁력 있는 소재부품을 공급해 줄 중견기업은 더더욱 미흡하다. 결국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는 첩경은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 활력이 넘치는 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있다.

규제혁파로 성장 잠재력 높이길

따라서 국내 기업 육성 전략에 성장 잠재력 확충을 위한 정책 역량을 모아야 한다. 창의성이 넘치는 중소기업의 끊임없는 창업을 바탕으로 중견기업 5000개 그리고 세계 100대 기업에 들어가는 10개의 대기업 양성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규제 혁파와 투자 인센티브 시스템 구축을 통해 기업 하기 좋은 제도와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이를 위한 필수조건이다.

국내 경제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국력을 최대한 결집해야 한다. 경제 위기 극복의 당위성을 제시해 금 모으기, 월드컵 응원, 서해안 기름띠 닦기,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폭발적인 에너지를 경제 위기 극복의 열기로 전환해야 한다. 이의 실현 여부는 감동을 주는 리더십에 달려 있다. 경제 위기 국면을 새로운 성장의 전기로 삼기 위한 지도층의 충정어린 솔선수범이 무엇보다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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