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이용삼]조선 혼천시계는 인류의 보물

  • 입력 2008년 7월 14일 03시 01분


새 1만 원권 지폐에 송이영(宋以穎)이 1669년(현종 10년)에 만든 혼천시계(국보 제230호)의 혼천의(渾天儀) 부분과 조선의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국보 제228호) 및 한국천문연구원의 1.8m 천체망원경 그림이 포함됐다. 혼천시계에는 시간을 알려주는 자명종과 시보(時報)장치, 천상(天象)의 운행을 자동으로 작동시키는 혼천의가 있다.

혼천의는 동아시아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한 천문의기(天文儀器)로 천체의 위치를 측정하고 시간과 절기를 측정할 수 있다. 고대 중국의 우주관인 혼천설(渾天說)을 구상한 모형으로 밑받침 위에 3층짜리 둥근 고리 형태의 각종 환으로 구성됐다. 복잡하게 보이지만 좌우 대칭을 이루는 구조가 안정된 모습이어서 신비한 우주를 연상시킨다.

천체를 관측하는 혼천의는 왕권을 상징하며 왕도정치사상을 구상화한 상징적인 도구로 유교적 정치이념을 구상한 천문의기였다. 조선의 역대 왕은 다양한 형태의 혼천의와 혼천시계를 제작했다. 명망 높은 유학자는 제각기 혼천의를 만들어 후학이 천문(天文)을 살펴 천상의 운행을 이해하도록 교육용으로 사용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도(道)의 원리를 이해하려는 유학자에게 혼천의(혼상)는 중요한 학습도구의 하나였다.

혼천시계에서는 시계의 동력장치가 혼천의의 극축과 연결된다. 시계가 움직이면 혼천의의 장치가 하늘의 움직임을 자동으로 보여준다. 혼천시계의 구조는 시계 부분과 혼천의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시계 부분에는 동력을 제공하는 두 개의 추가 있는데 하나는 시계를 작동시키고 또 하나는 타종장치를 작동시킨다.

시계장치에는 진자를 이용한 탈진장치, 시간을 알려주는 시패(時牌)와 구슬장치로 신호를 보내서 종을 치게 하는 타종장치가 있다. 구슬을 이용한 신호장치는 우리 과학기술의 전성기였던 세종 때 장영실이 만든 자격루의 전통을 잇는다. 진자를 이용한 탈진장치는 서양에서 1657년 처음 개발했다고 알려진, 당시로는 최첨단인 서양식 기계시계의 장치를 이용했다.

혼천시계의 혼천의는 천문을 관측하는 것이 아니고 시계와 연결되어 하늘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혼천의의 안쪽 고리 중에서 삼신의(三辰儀)는 하루에 한 바퀴 회전한다. 삼신의에는 28수(宿) 별자리를 표기한 하늘의 적도가 있다. 황도환에는 태양이 실에 매달려서 매일 1도씩 움직여 1년이 지나는 동안 해당 절기(당시 양력의 개념)를 알려 준다. 백도환에 연결된 달의 위상변화장치는 음력 날짜에 해당되는 합삭과 초승달, 상현달, 보름달, 하현달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쉽게도 국보 제230호인 혼천시계에는 달을 보여주는 장치가 훼손돼 없어졌다.

혼천시계에 관해 책을 집필한 중국 과학사의 대가인 영국의 조지프 니담 교수는 “조선의 혼천시계는 동아시아 시계사에서 획기적인 유물로 전 세계에 널리 알릴 만한 가치가 있다”고 극찬했다. 송이영이 만든 혼천시계는 조선의 전통적인 시계기술의 축적과 천문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당시 서양의 최첨단 기계시계(진자 사용) 기술을 집약했다. 동서양 자동시계의 주요한 특징을 잘 조화시킨 새로운 모델의 천문시계이며 17세기 최신 세계지도까지 반영해 창조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혼천시계는 서양과 중국, 일본에도 없는 한국의 독창적 창제품(創製品)이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현존하는, 인류의 소중한 과학문화재이다. 우리는 지갑 속의 1만 원권 지폐를 꺼내 만질 때마다 선조의 과학정신을 느껴볼 수 있다.

이용삼 충북대 교수·천문우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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