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투기세력에 패 보여주는 환율게임, 안전판 있나

  • 입력 2008년 7월 11일 03시 00분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이 강도를 높여가면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당국이 하루 최대 50억 달러에 이르는 ‘달러 폭탄’을 쏟아 붓자 1주일 전 1050원을 웃돌던 원-달러 환율이 어제는 장중 한때 990원대까지 떨어졌다. 물가 안정을 위해 환율 상승세를 꺾어 놓겠다는 정책 의지가 당장은 효과를 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장에선 개입이 실패로 끝날 것이라는 시각이 강세다. 원화(貨)로 달러를 싼값에 사들일 수 있어 증시(證市)의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국내 주식을 팔고 한국을 탈출할 호기(好機)를 제공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자국의 통화가치 안정을 위해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국제적으로도 일정 부분 용인된다. 그러나 시장을 상대로 ‘붙을 테면 한번 붙어보자’는 식으로 도발하는 모양새가 돼서는 국제 환(換)투기세력의 공세를 자초할 위험성이 있다.

외환 당국자는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2581억 달러(6월 말 기준)로 비교적 여유 있다고 본 듯 “실탄은 얼마든지 있다”고 호언했지만 지금처럼 ‘가진 패’를 다 보여줘서는 밑천이 언제 바닥날지 모른다. 더구나 우리는 외채가 4000억 달러를 넘어 1, 2개월 뒤면 외국에서 받을 돈보다 갚아야 할 돈이 더 많은 순(純)채무국으로 전락할 처지다.

경상수지 적자가 쌓이는데도 억지로 환율을 떨어뜨리기(원화 가치를 높이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낭비하다가 달러 지불불능 상태로 치달은 1997년의 뼈아픈 실패를 되새겨야 한다. 시장이 출렁일수록 중소기업과 개인은 환차손에 당하고 투기세력은 돈을 벌 가능성이 높아진다.

과도한 환율 상승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시장에 전달됐다. 이제는 우격다짐 식의 직접 개입보다는 시장기능을 존중하면서 환율이 적정수준에서 움직이도록 유도하는 ‘스무싱 오퍼레이션(smoothing operation)’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3, 4개월 전 수출을 늘리겠다며 환율 상승에 다걸기하다가 이번엔 물가를 잡겠다며 정반대로 가고 있다. 정부의 개입은 절제된 형태로 세련되게 이뤄져야 효과를 높이고 후유증을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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