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폴 크루그먼]美, 인플레 예방용 금리인상은 毒

  • 입력 2008년 6월 6일 02시 53분


최근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그의 동료들은 금융체제의 붕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1930∼31년에 발생한 세계 경제공황 당시 그들의 선배가 실패했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은 이들의 노력이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금융시장 상황이 신용위기가 발생하기 전 상태로 회복되진 못했지만 혼란은 지난 몇 개월에 걸쳐 조금씩 누그러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모든 사람이 버냉키 의장과 FRB의 성과를 축하하는 것만은 아니다. 최근 열린 한 경제회의에선 정책결정권을 가진 주요 인사를 비롯한 참가자의 상당수가 버냉키 의장과 FRB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1930년대식 금융 몰락에 대한 공포는 확실히 사라졌다. 그러나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과 같은 상황이 올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 FRB는 인플레이션 문제에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갈수록 퍼져나가는 통설은 버냉키 의장이 줄곧 ‘잘못된 상대’와 겨뤄 왔다는 지적이다. 진정으로 위협적인 상대는 금융위기가 아니라 인플레이션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위협을 없애기 위해서는 FRB가 경기침체를 우려하지 않고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통설이 완전히 잘못됐다는 것을 알릴 시기가 아닌가 싶다. 그래야 1970년대 잘못된 해법으로 많은 피해를 가져왔던 인플레이션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고유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이 생계비를 오르게 하면서 서민들의 고통이 심해진 것은 맞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1970년대와 같은 임금 인상의 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당시 임금 인상은 고유가로 인한 일시적 충격을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인플레율로 바꿔 놓았다.

근로자와 고용주는 임금 인상을 두고 목마타기 놀이를 하는 듯했다. 근로자가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하면 회사 측은 그 비용을 상품의 가격에 포함해 충당했다. 이렇게 해서 물가가 상승하면 근로자들은 다시 임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해 악순환이 지속된 것이다.

이 같은 ‘자발적 인플레이션’은 한번 시작되면 막기가 어렵다. 실제로 이는 1930년대 최악의 경기침체처럼 매우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곤 했다.

소비자들이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는 중에도 근로자들은 임금 인상을 통해 높아진 물가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 한다. 고용주들이 그 같은 요구를 감당해주기만을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전반적인 임금 인상 속도는 노동시장의 위축 때문에 느려지게 된다.

현재로서는 임금 인상과 물가 상승의 악순환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릴 필요는 없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인플레이션은 저절로 떨어질 것이다.

그렇더라도 인플레이션에 대한 ‘보험’으로 생각해 금리를 조금 올려본다면 어떻게 될까? 금리가 오르면 이제 막 누그러든 금융 위기가 다시 폭발할 수도 있고 가뜩이나 약해진 실질 경제를 더욱 약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그러니 현재 상황이 경기침체라 하더라도 너무 신경 쓰지 말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기침체라고 느끼고 있지만 금리 인상은 상황을 더욱 나쁘게 만들 뿐이다. 결론적으로 가스와 식료품 가격 상승이 미국인들의 가계에 실질적인 해악을 끼치더라도 1970년대식 인플레이션 악순환은 유발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두려움 그 자체다. 이런 두려움은 현재의 나쁜 경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정책을 낳을 수 있다.

폴 크루그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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