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안세영]韓-칠레가 웅변해준 FTA 효과

  • 입력 2008년 4월 1일 02시 53분


우리나라 자동차의 대(對)칠레 수출이 날개를 달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연 50% 남짓한 수출증가율을 기록하더니 드디어 일본을 누르고 수입자동차 시장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자동차뿐만 아니라 다른 상품 수출도 칠레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지 불과 4년 만에 6배가 늘어나 30억 달러를 넘었다. 이 모두 엄청난 진통을 치르며 탄생시킨 한-칠레 FTA 덕분이다. 우리가 맺은 첫 번째 자유무역협정의 성공은 앞으로 한국경제가 나아가야 할 개방과 세계화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제시한다.

자유무역의 명확한 비전 제시

그런데 어처구니없이 지난해 4월 2일 타결한 한미 FTA 비준안이 여의도에서 잠자고 있다. 연초에 정치권이 관심을 좀 갖는 것 같더니 총선을 앞두고 관심권 밖으로 팽개쳐졌다.

이제 열흘만 지나면 총선의 열기도 사라지고 곧이어 새 대통령이 미국과 일본 순방길에 나선다. 이번 순방은 최대 우방인 두 나라와 지난 5년간 꼬일 대로 꼬인 정치, 안보, 경제 분야의 많은 매듭을 푸는 역사적 정상회담이 될 것이다. 특히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 동맹 복원, 북핵 등 여러 이야기를 나누겠지만 한미 FTA 비준도 최대 관심사가 될 것이다. 토머스 허버드 전 주한 대사가 지적했듯 이제 한미동맹은 단순한 군사안보 차원을 넘어 경제와 투자를 아우르는 다차원적 관계에서 복원돼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 국회가 정쟁만 일삼는 것이 아니라 때론 국가의 앞날을 위해 결단을 내릴 줄도 안다는 감격을 국민에게 한번 안겨줬으면 좋겠다. 물론 정부도 미 의회가 관심을 보이는 쇠고기시장의 개방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만약 우리가 조속히 한미 FTA를 비준한다면 일본, 중국이 앞다퉈 정부 간 협상을 시작하려고 할 것이다. 이미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는 한일 정상회담에서 그간 교착상태에 빠진 협상을 재개하자고 했으며, 중국도 진행 중인 산관학 공동연구가 끝나자마자 정부 간 협상을 시작할 것을 넌지시 제안했다. 이렇게 되면 일본과 중국 두 나라를 경쟁시켜 유리한 협상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비준을 자극하는 계기도 될 수 있다.

사실 미국이 한국과 FTA 협상을 시작한 것은 경제적 동기도 있지만 동아시아에서 치열한 헤게모니 게임을 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숨은 목적도 있다. 이런 미묘한 국제정치 상황에서 만약 미 의회가 한미 FTA 비준을 거부한다면 이는 동북아공동안보체제의 구성에 중요한 역할을 할 한국을 정치적으로 등한시하며 중국의 영향권 아래로 밀어넣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일부에서는 미 민주당 대선후보들의 한미 FTA 비준에 대한 부정적 발언을 우려하지만, 빌 클린턴 대통령도 후보 시절에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반대하다가 막상 백악관에 들어가자 의회 비준을 위해 열심히 뛰었다. 따라서 우리가 먼저 이번 봄에 비준을 한다면 앞으로 한미관계에서 유리한 주도권을 쥐고 미 의회 비준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자원외교보다 뒷전 밀리지 않도록

기존의 FTA 정책이 새 정부가 내세우는 자원외교의 뒷전으로 밀려서는 안 된다. 한미 FTA 비준에 이어 지금 한창 진행 중인 유럽연합(EU), 캐나다, 인도, 멕시코와의 FTA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는다면 우리가 명실상부한 FTA 허브국가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고 한국 경제의 선진화도 앞당길 수 있다. 또 동북아 주도권 싸움에서 국제적 발언권이 높아져 6자회담을 둘러싼 북핵 문제와 통일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 한-칠레 FTA가 단순한 경제적 성과에 머물렀다면 한미 FTA는 경제뿐만 아니라 안보, 국제정치에서 통일에 이르기까지 메가톤급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안세영 서강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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