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만우]먹을거리 안전 대책 당장 내놔라

  • 입력 2008년 3월 22일 03시 00분


경영학에서는 고객의 집단적 반응이 놀라운 정확성을 보이는 사례가 많이 관찰된다. 한 제과업체에서 가격을 올리는 대신 포장은 그대로 두고 내용물을 조금씩 줄였던 일이 있었다. 고객이 개별적으로는 인지할 수 없는 수준의 작은 변화였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판매량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화들짝 놀라서 함량을 원래 상태로 돌려놓았더니 판매량이 회복됐다는 것이다.

반제품 産地꼭 표기하게 해야

라면과 과자에서 최고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농심의 매출액이 2004년을 정점으로 줄어들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급기야 경영혁신 전문가로 명성이 높은 삼성 출신 손욱 회장을 영입했는데 혁신의 시동을 걸기도 전에 대표 브랜드인 새우깡에서 생쥐머리로 추정되는 이물질이 발견되는 대형사고가 터졌다.

사고 원인 규명과정에서 농심의 윤리 부족 등 난맥상이 밝혀져 그동안의 판매 부진이 고객의 정확한 집단적 판단에 의한 배척이었음이 드러났다. 농심은 ‘손이 가요 손이 가’라는 광고 구호를 수십 년 동안이나 계속할 만큼 국민적 선호가 높은 새우깡을 만들면서 원가절감을 위해 중국산 원료를 사용하고 제조 공정 대부분을 중국에서 수행해 왔다. 완성품 수준의 반제품을 국내에 가져와서 포장작업 정도만 마무리해 유통시켰던 것이다. 그 결과 불량제품으로 인한 고객 불만이 끊이지 않았고, 최근 제품에 이물질이 들어 있다고 한국소비자연맹에 접수된 신고 건수에서 농심이 단연 선두를 달리고 있다.

기업의 가장 중요한 책임은 고객의 신뢰에 부응하는 것이다. 특히 음식료품을 다루는 기업은 원가나 이익 같은 이기적 수치보다는 식품안전을 최고의 가치로 놓아야 한다. 농심은 반제품 생산국이 중국임을 감출 수 있는 엉성한 ‘원산지 표시제도’를 교묘히 활용해 왔다. 차제에 원산지를 단계마다 명확하게 표시해 소비자들의 정확한 선택이 담보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농심은 ‘생쥐머리 새우깡’이 발견된 이후에도 이를 숨기기에 급급했고 동일 시점에 제조돼 같은 수준의 오염이 포함됐을 개연성이 높은 제품을 즉시 수거하는 최저 수준의 기업윤리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니 과거에도 이런 유형의 사고가 빈발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마저 떨칠 수 없다. 농심이 사건 발생 즉시 제품 수거 및 문제점 진단과 획기적인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고 진정어린 사과를 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농심은 일자리 부족으로 실업자가 양산돼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던 시점에 주요 제조공정을 중국으로 이전했다. 남녀노소 없이 국민 모두의 사랑을 받아 독점적 브랜드 로열티를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일자리 만들기’라는 기본적인 사회적 책임을 저버린 차가운 이익 챙기기였던 것이다. 국민의 사랑을 받는 만큼 국민을 향한 책임을 더욱 충실히 챙겼어야 했는데 이제는 돌이킬 수 없게 됐다.

정부 감독체계 전면 재정비를

새우깡은 37년 동안 매년 600만 봉지씩이나 팔려 국민 모두가 애용했던 대표 간식이다. 이제 ‘새우깡의 추억’은 ‘생쥐머리의 악몽’이 됐고 생각만 해도 속이 메스꺼워지는 현실이라 시장에서의 퇴출을 피하기가 힘들게 됐다. 고객에 대한 책임을 망각하고 이익 챙기기에 급급했던 결과는 수천억 원의 브랜드 가치를 허공에 날려 버릴 수도 있는 위기를 자초하고 말았다.

고객에 대한 끝없는 충성이 기업의 존재 이유가 돼야 한다. 기업인 모두 ‘기업은 고객을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명제를 항상 되새겨야 한다. 정부도 식품안전을 위한 감독체계를 좀 더 선진화하고 투명한 원산지 표시가 이행될 수 있도록 제도개선작업을 신속히 완료해야 할 것이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대 교수·한국회계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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