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김정구]‘은하철도 999’ 태워 드릴까요

  • 입력 2008년 3월 10일 02시 59분


지금 30, 40대 중에는 어린 시절, TV에서 ‘은하철도 999’라는 만화 시리즈를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어머니를 잃은 소년이 안드로메다로 가는 동안 겪는 모험과 인간사회의 갈등에 관한 만화로 대단한 인기를 모았다. 이 만화에서 이상한 것은 교통편이었다. 우주선이 아니라 바퀴가 달린 증기기관차로 연기를 내뿜으며 우주 공간을 날아가는 것이다.

만화 속의 날아다니는 초고속 기차는 단순한 꿈이 아니다. 이미 우리나라에도 대전 대구 등 여러 곳에서 설치를 추진하고 있을 정도로 개발이 된 상태다. 기차가 선로 위를 떠서 날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고속으로 달릴 때 큰 에너지의 손실 없이 선로 위를 뜰 수 있는 방법, 그리고 바퀴가 선로와 닿지 않은 상태에서 달릴 수 있는 추진력이 해결돼야 한다.

이 기술 중의 하나가 초전도 자석과 선형모터의 기술을 융합한 ‘자기부상 열차’다. 기본적으로 달리는 열차에 탑재된 초전도 자석과 선로에 설치된 코일 사이에 작용하는 전자기적 힘을 이용해 열차가 떠서 달리게 하는 방식이다.

구리나 알루미늄 같은 금속은 내부에 규칙적으로 배열 고정된 원자들과 움직이는 전자로 구성돼 있다. 저항이 비교적 작은 금속의 경우, 움직이는 전자는 고정된 위치에서 열에너지로 인해 진동하는 원자들과의 충돌 때문에 운동에 방해를 받아 저항이 있다. 고체에서는 소리가 원자의 진동에 의해 전파되므로 원자의 진동을 ‘소리’라고 할 수 있다. 온도가 높으면 원자의 진동 폭이 커 전자와 원자 진동 간의 충돌이 심해 저항이 크고, 온도가 낮으면 반대로 저항이 낮아진다. 하지만 아무리 온도를 낮춰도 저항은 존재한다.

그러나 일부 금속은 낮은 온도로 냉각해 특정 온도 이하가 되면 갑자기 저항이 없어지는 ‘초전도’ 현상이 나타난다. 전자들은 같은 전하를 갖고 있어 밀치는 힘을 받아 따로 움직이지만, 낮은 온도에서는 두 개의 전자가 원자 진동을 주고받을 때 ‘당기는 힘’이 생겨 짝을 이뤄 움직이기 때문에 약한 충돌에는 방해받지 않아 저항이 없는 초전도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기차가 공중에 떠서 달리는 원리는 패러데이 법칙을 이용하는 것이다. 자석(예를 들어 N극)을 코일에 가까이 대면 코일을 통과하는 자기력선의 수가 증가하는데 패러데이 법칙에 의해 코일에는 이런 증가를 방해하는 방향으로 자기력선을 유도하는 전류가 생겨 코일과 자석은 서로 밀치는 힘을 받게 된다. 저항이 없는 초전도체로 전자석을 만들어 전류를 흘리면 에너지 손실 없이 강한 전자석을 만들 수 있다. 이 초전도 전자석을 기차에 싣고 달리면 땅에 깔린 금속 코일에는 순간적으로 자기력선이 증가하면서 이 변화를 방해하는 전류가 유도돼 반대 방향의 자기력선이 생긴다. 기차와 코일은 N극과 N극을 마주한 것처럼 서로 밀치는 힘을 받는다. 초전도 자석을 실은 기차가 빠르면 빠를수록 자기력선의 변화율이 커지고 이에 비례해 밀치는 힘도 강해져 드디어 기차가 떠서 날아간다.

초전도자석 부상방법은 일본이 선진국으로, 현재 시험 중인 기차는 시속 500km로 5cm 정도 떠 달리는 기술적으로 앞선 방식이다. 또 다른 방식은 열차의 바퀴 부근에 구리 전자석을 붙여서 전자석의 강도를 조절함으로써 바퀴 위 선로에 고정된 자석과 자기력으로 뜨게 하는 독일식 방법이다. 건설비와 기술적 문제 등으로 현재 시공 중인 자기부상 열차는 거의 독일식이지만 언젠가는 시속 500km의 초전도 자기부상열차가 날아다닐 것이다. 아쉬운 점은 우리의 경우 항상 단기간에 성과가 나와야 하기 때문에 이처럼 멀리 보는 연구를 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김정구 서울대 물리천문학과 교수 한국물리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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