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원재]펀드 부자, 부동산 부자

  • 입력 2008년 2월 24일 22시 27분


이명박 정부의 일부 장관 후보자들이 재산 문제로 곤욕을 치르는 것을 보고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부동산 대신 펀드 투자로 막대한 이익을 챙긴 사람이 나왔다면 어땠을까. 바야흐로 1가구 1펀드 시대다. 국민은 투자 안목을 평가하며 승복하지 않았을까. 공정하게 경쟁하는 펀드 투자에서 그 정도로 성공한 재테크 감각이라면 국민의 질시를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제 자진사퇴한 이춘호 여성부 장관 후보자의 재산 목록엔 아파트 사무실 오피스텔 점포 임야 논 도로 같은 온갖 종류의 부동산이 망라됐다. 장관 후보자들이 주식형 펀드의 비중이 높고 중국 펀드에도 분산 투자해 재미를 본 ‘펀드 부자’였다면 ‘부동산 부자’보다는 보기에 훨씬 좋았을 것이다. 재산형성 과정을 물을 때 펀드 투자 성공담을 소개하면 청문회 시청률이 오르고 국민의 친근감도 커질 것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이 세상인심이라지만 정당하게 돈을 번 고수는 존중받는 법이다.

장관 후보자 중에 부동산 부자가 많은 것은 한국 재테크사(史)의 단면이다. ‘땅은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부동산 불패(不敗) 신화를 거듭되는 성공을 통해 체득했을 것이다.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할 뿐, 투기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했지만 값이 폭등하는 지역의 땅을 사랑하는 것이 곧 투기다.

재테크 현장의 패러다임은 변하고 있다. 주식과 펀드 투자가 주목 받은 것은 외환위기 이후로 10년밖에 안 됐지만, 금융은 한국인의 경제생활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펀드 계좌는 지난해 말 2295만3000개로 1년 사이에 1000만 개 이상 늘었다. 그만큼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 많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펀드는 직장인과 자영업자들에게 부자가 될 수 있는 길을 터준 현대 금융자본주의의 선물이다. 가치투자 신봉자인 한국밸류자산운용 이채원 전무는 한국에도 펀드 부자가 나올 날이 머지않았다고 믿는다. 그는 워런 버핏의 사례를 들며 “펀드 매니저(혹은 자산운용사)와 투자자가 서로를 믿고 의기투합하면 상상 이상으로 돈을 불릴 수 있다”고 말한다. 버핏의 투자회사인 버크셔 해서웨이는 1965년부터 2006년까지 42년간 약 3600배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버핏의 혜안에 주목해 처음부터 투자자로 나섰다면 원금의 3600배를 벌 수 있었다는 얘기다. 다만 투자자와 펀드의 궁합이 맞지 않으면 양쪽 모두에게 비극이 된다. 보수적인 투자자가 단기 수익 위주로 돈을 굴리는 펀드를 택하면 수익률이 올라도 언제 잃을까 두려워 잠을 설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펀드 투자는 공개된 시장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위장전입과 같은 불법이나 편법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투자된 돈은 증시를 거쳐 기업으로 흘러가 경제를 살찌우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한다. 평범한 개인들이 주가가 출렁여도 환매하지 않고 펀드에 계속 돈을 넣는 것은 한국 경제가 잘되리라는 희망 때문이다.

10년 만의 정권교체에 따른 타임래그(timelag·시간지체)를 장관들의 재산 포트폴리오에서 실감하는 심정은 씁쓸하다. 미래를 보고 펀드에 투자하는 국민과 부동산을 부여잡고 도덕성을 의심받는 장관이 대비된다. 재테크에도 세상을 보는 철학이 담긴다. 돈의 철학이 다른 장관과 국민의 궁합이 제대로 맞을지 모르겠다.

박원재 논설위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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