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문화지도]off 홍대앞

  • 입력 2008년 1월 30일 03시 11분


진정 ‘홍대스러움’을 즐기고 싶다면 변두리로 발길을 돌리라는 말이 있다. 최근 상수동 합정동 망원동부터 동교동 연남동까지 홍익대를 둘러싸고 있는 변두리에 홍대 문화가 꽃피고 있다. 위부터 상수역에서 합정역 사이에 있는 갤러리형 카페인 ‘플로랄 고양이’ ‘무대륙’ ‘풀로 엮은집’의 외부 모습. 변영욱 기자
진정 ‘홍대스러움’을 즐기고 싶다면 변두리로 발길을 돌리라는 말이 있다. 최근 상수동 합정동 망원동부터 동교동 연남동까지 홍익대를 둘러싸고 있는 변두리에 홍대 문화가 꽃피고 있다. 위부터 상수역에서 합정역 사이에 있는 갤러리형 카페인 ‘플로랄 고양이’ ‘무대륙’ ‘풀로 엮은집’의 외부 모습. 변영욱 기자
《예술은 길 위에서 벌이는 업(業)이다. 정착을 모르는 예술인들은 매번 창작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는 독립적인 공간을 찾아 나선다. 그렇게 허허벌판에 개척한 공간에 자본이 침투하면 근방의 또 다른 곳을 찾아 떠나는 게 예술인들의 속성이다. 그들은 어디로 흩어지고 어디로 모여들고 있는 걸까.

주류로 변질된 미국 브로드웨이에 대한 반발로 형성된 ‘오프브로드웨이(Off Broadway)’처럼 한국 인디문화의 메카인 ‘홍대 앞’과 ‘연극 1번지’인 대학로도 최근 그러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신(新)문화지도’를 통해 ‘홍대 앞’과 대학로의 변두리에서 새로운 문화지대를 개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홍대앞-대학로 상업화 高임차료” 엑소더스

대안문화 새 둥지서 연극-음악 젊은 실험

‘모드룩의 남자와 초미니스커트의 여자/울고, 싸우고, 토하고, 집에 가기 싫다고 소리치는/펑크 소녀의 달콤한 과일 향과/업고, 두드리고, 맞고, 달래는/힙합 소년의 휴고 보스 향수 냄새.’(함성호 시인의 ‘홍대 앞 금요일’, 2007년)

흔히 ‘홍대 앞’으로 부르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익대 인근의 요즘 풍경은 한 시인의 묘사에 그치지 않는다. 클러버(클럽에서 춤추는 사람)들의 파티 향연, 럭셔리한 와인바로 ‘청담동화’한 분위기…. 이것이 홍대 미술학원 거리를 중심으로 퍼져 있던 ‘홍대 앞’의 최근의 대표적인 문화이자 풍경이다.

상업화된 ‘홍대 앞’과 별개로 ‘홍대 앞’의 변두리 지역이 끊임없이 새로운 지도를 그리고 있다. ‘홍대 앞’의 변두리였던 마포구 상수동, 합정동, 망원동, 성산동, 연남동, 동교동 등 한적한 주택가들이 새로운 문화 지대로 꽃피고 있다.

○ 뮤지션과 화가들이 ‘홍대 앞’을 떠난 까닭은?

그룹 ‘허클베리핀’ 리더 이기용 씨는 최근 마포구 상수역 근처에 ‘샤’라는 술집 겸 공연장을 열었다. 걸어서 3분 거리에 지하철역이 있고 길만 건너면 번화가가 나오지만 이곳은 놀랄 정도로 한적하다.

그는 “가게를 낼 때 고려한 게 ‘중심으로는 가지 말자’였다”며 “홍대 특유의 문화를 좋아하는 나조차도 요즘 ‘홍대 앞’은 즐기기 힘든 곳”이라고 말했다. 그 근방엔 지난해 5월 ‘델리스파이스’의 드러머 최재혁 씨가 카페 ‘버닝 하트’를 열었다.

몇 년 전부터 뮤지션들의 작업실과 인디레이블(음반기획사)들이 속속 ‘홍대 앞’ 변두리로 흩어지고 있다. 인디 그룹 ‘라이너스의 담요’가 소속된 비트볼 레코드 사장 이봉수 씨도 지난해 11월 ‘홍대 앞’ 사무실을 정리하고 성산동으로 이사했다. 이 씨는 “홍대에서 차로 15분 거리인 이곳은 창작 활동을 충분히 보장받을 수 있을 만큼 한적하다”며 “우리 음악에 걸맞은 곳을 발견했기 때문에 다시 ‘홍대 앞’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미술가들의 작업실 등을 포함하면 연남동, 동교동 등지에 예술가 작업실은 500곳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뮤지션, 화가들의 작업 공간이 변두리 주택가로 침투하자 자연스럽게 카페도 속속 들어서고 있다. 특히 ‘무대륙’ ‘디디다’ 등 갤러리형 카페의 이동이 눈에 띈다. 합정역 근처에서 갤러리 카페 ‘아트 사다리’를 운영 중인 김상진 씨는 “5개월 전 문을 열 때 20개이던 갤러리형 카페가 지금은 두 배 정도 늘어났다”며 “상수역과 합정역 주변으로 화가들의 갤러리형 카페가 점점 더 번질 것”이라고 말했다.

○ 지가 상승, 홍대의 상업화로 떠나는 사람들

연남동에 작업실을 둔 서양화가 고선경 씨는 “10년 전엔 10평 정도의 공간을 전세 3000만 원에 구할 수 있었지만 현재 7000만 원 이하로는 얻을 수 없다”며 “동료 화가들은 고육책으로 임차료가 싼 공덕동이나 영등포로 옮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홍대 ‘원주민’들이 변방으로 흩어지는 이유는 급상승한 임차료 때문.

‘독립된 공간+저렴한 임차료’가 장점이던 ‘홍대 앞’이 상업화되면서 그 같은 장점을 외곽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비주류, 인디를 상징하던 ‘홍대 앞’이 더는 예전 같지 않다는 인식도 한몫했다. 이봉수 씨는 “‘홍대 앞’이 지금처럼 소비지향적으로 변해 간다면 현재 뮤지션 간의 교류를 이유로 남아 있는 뮤지션들도 굳이 ‘홍대 앞’을 고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과거 ‘홍대 앞’을 즐겨 찾던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상수역 근처 회사를 다니는 이지혜(26) 씨는 “신촌이 술, 이화여대 앞이 쇼핑을 상징한다면 홍대 앞은 문화를 즐긴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며 “하지만 ‘홍대 앞’이 소비 성향이 짙은 클러버들이 술 마시고 노는 공간으로 변하면서 나만의 분위기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변방으로 흩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변두리 지역조차도 빠른 속도로 카페와 술집이 침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소비적인 ‘홍대 앞’을 탈출한다는 것보다 변두리 지역의 재개발에 편승한 부동산 붐일 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 씨는 “자생적으로 ‘홍대 앞’의 외연이 확장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현재는 부동산 붐에 기댄 개발의 과정이라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럭셔리 클럽부터 B급까지 요즘 홍대앞엔 다 있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듯 홍익대 앞도 변했다. 요즘 홍대 앞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문화 백화점’이다. 복합문화공간과 독특한 카페 문화, 이국 식당 등이 어우러진 이곳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B급 문화부터 최신 유행 문화까지 경험할 수 있다.

가장 큰 흐름은 중소 규모 공연장이 생겨나고 있는 것. 지난해 KT&G의 ‘상상마당’과 가수 신해철이 운영하는 ‘고스트 시어터’가 문을 열어 ‘제2의 전성기’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또 콘서트 위주의 공연장이 속속 등장하면서 주류 가수들도 홍대 앞 공연장을 적극 이용하는 추세다.

매월 세 번째 금요일 티켓 1장으로 홍대 앞 10곳의 라이브 클럽을 즐길 수 있는 ‘사운드 데이’처럼 실속파를 위한 제도도 자리 잡았다. 반면 고급 와인에 라운지 음악이 흐르는 파티 클럽들도 번성 중이다. 일부 럭셔리 클럽은 지나치게 고급화를 추구하며 홍대 앞 문화를 변질시킨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최근에는 ‘클럽지구’ 외에 ‘카페지구’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많은 카페가 문을 열었다. 특히 산울림 소극장 일대는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인기에 힘입어 ‘커피프린스 골목’으로 불린다. 이곳 카페들은 커피나 차뿐 아니라 영화 상영, 작품 전시, 음악 감상실 운영 등 문화도 함께 팔고 있다.

‘제2의 이태원’이라고 불릴 정도로 이국적인 공간도 많이 들어섰다. 홍대 정문 근처에 형성된 외국 카페 겸 식당에서는 태국 말레이시아 멕시코 모나코 그리스 음식과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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