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의 법과 사회]조화로운 출범과 법의 유연성

  • 입력 2008년 1월 29일 02시 59분


2007년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취임 즉시 행정 각부를 15부로 축소하는 정부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프랑스는 헌법상 정부조직 비(非)법정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정부조직은 법률 사항이 아니라 정부에서 자율적으로 정하는 것이다. 행정 각부의 조직과 의전 서열, 국무회의 구성원은 ‘정부조직에 관한 대통령령’을 통해 결정된다. 하지만 그 어느 정부도 조직의 기본 틀을 일탈하지 않는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첫 정부조직의 밑그림이 그려졌다. 2원 13부, 축소 지향적이다. 수십 년 동안 지속돼 온 기존 체제에 대한 변신이라 반대 또한 만만찮다. 개정 법안이 국회에 상정됐지만 물러날 정부 여당의 반대와 관련 기관의 로비 때문에 원형이 유지될지 의문이다. 프랑스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헌법 제96조에 ‘행정 각부의 설치·조직과 직무범위는 법률로 정하도록’ 규정해 반드시 국회의 입법 과정을 거쳐야 하는 전형적인 정부조직 법정주의 국가다.

정부조직의 법정주의와 비법정주의는 서로 상반된 장단점을 공유한다. 법정주의는 조직이 경직적이지만 위정자의 자의적 개입으로 야기되는 조직 농단을 차단할 수 있다. 비법정주의는 새 정부가 국민에게 제시한 정책기조와 정강정책을 능동적 탄력적으로 정부조직에 투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정부조직의 현실적 구현에 있어서는 법체계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두 제도가 갖는 장단점을 조화시켜 나가야 한다.

국민은 정권 교체를 통해 이명박 정부에 신임을 부여한 이상 현장에서 국정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인수위 안은 세계적 흐름인 작고 효율적인 정부 구현 모델이어서 기본 방향은 이상적이다. 정부조직법안이 대통령 취임일까지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는다면 새 정부는 절름발이인 채로 출범할 수밖에 없다. 지엽적 문제를 가지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몇 가지 기본 원칙은 재확인돼야 한다.

첫째, 차제에 대통령 직속 집행기관은 폐지돼야 한다. 헌법상 국무총리의 통할을 받지 않는 행정 각부에 유사한 집행기관을 대통령실에 설치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크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 직속 중앙인사위원회의 폐지는 당연하다. 그런데 방송통신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기구로 설치하고 있다. 방송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제고하기 위해 설치된 제4의 독립 행정기관인 방송위원회가 제대로 작동되지 못했다는 반성적 성찰에서 비롯됐다면 국무총리 직속 기관으로 해야 제대로 일도 할 수 있고 헌법체계에도 정합한다. 이명박 당선인은 국정을 직접 챙기고 장악할 스타일로 보인다. 그럴수록 청와대와 총리를 중심으로 하는 내각의 역할 분담이 더 필요하다. 총리의 지휘감독권과 행정 각부 장관의 정치와 행정에서의 역할 강화를 통해 작고 효율적인 정부 운영의 기본 틀이 작동될 수 있다.

둘째, 국가 조직은 누구나 그곳이 어떤 일을 하는지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건국 60년 동안 통용되어 온 조직의 근간은 지켜져야 한다. 일보다는 구호만 요란한 말의 성찬에 집착한 작명은 바람직하지 않다. 야경국가 시대에도 국가의 기본 과제를 수행해야 할 조직은 있게 마련이다. 국방 치안 교육 재정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 ‘교육’을 ‘인재’로 둔갑시켰다가 한국교총의 항의에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지식경제부라는 산업자원부의 확대 개편 모델도 낯설다.

셋째, 폐지가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통일부의 기존 조직은 곳곳으로 분산되면서 사실상 폐지됐다. 통일 과업은 전통적인 외교 업무와 구별된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해 분명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무임소 장관의 일종인 특임장관의 통일업무 수행에도 한계가 있다.

성낙인 서울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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