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호 칼럼]권력 이동을 보면서

  • 입력 2008년 1월 28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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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의 장편 ‘운현궁의 봄’은 고종이 즉위하기 이전의 흥선 대원군을 다루고 있다. 술판과 투전판을 기웃거리고 난을 치며 본색을 숨기고 있던 그는 세도가에게 ‘상갓집 개’라는 소리까지 듣는다. ‘상갓집 개’란 본시 성문에 홀로 서 있는 떠돌이 공자를 두고 정(鄭)나라 사람이 한 말이다. 그 얘기를 전해들은 공자는 “딱 맞는 말”이라며 웃었다는데, 돌봐 주는 이 없고 제대로 먹지도 못해 수척하다는 함의가 있다. 집 없는 사람이란 함의도 있다. 요즘말로 하면 소외된 아웃사이더란 뜻이다.

수모와 홀대를 당하는 흥선은 곧잘 “화무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란 소리가락으로 눙치며 자신을 달랬다. 흥선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물론 꽃도 달도 풍월도 아니다. 막강한 권력과 세도도 끝이 있게 마련이란 것이다. 오랜 인고 끝에 흥선도 권력을 거머쥐지만 그의 권력 또한 장구하지는 못했다.

오만한 인물이나 권력이 사양길로 접어들면 으레 뒤따르는 말이 있다. “오만 끝에 몰락이 온다.” 성서의 잠언에서 유래한 서양 속담이다. 일본 문학의 고전 ‘헤이케 이야기’ 첫머리에는 ‘으스대는 사람도 오래가지 못하느니 권세란 한갓 봄밤의 꿈과 같다’는 대목이 보인다. 불교의 무상관이 매우 음률적인 가락으로 토로되어 있는 것이 특색이다. 오만해 볼 능력도 기회도 갖지 못한 보통사람들은 이런 대목에서 위안을 받게 될 것이다. 종교나 문학의 매력은 이러한 위안의 사례와 무관하지 않다.

“오만 끝에 몰락이 온다”

방자하고 오만한 권력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인간 감정이다. 그러나 권력이란 본시 오만한 것이다. 타자를 내 의사대로 움직이게 하는 힘이 곧 권력이요, 따라서 권력은 오만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권력을 더욱 오만 방자하게 만드는 것도 사람들이다. 괜히 두려워서, 또 크고 작은 이해관계를 위해서 사람들은 권력 앞에서 읍하고 조아리며 몸을 굽힌다. 보비위(補脾胃)를 위해 듣기 좋은 소리만 한다. 대개의 독재자나 최고 권력자가 장수하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고많은 날 주위에서 엔도르핀 증가를 경쟁적으로 도모해 주니 어찌 빨리 갈 수가 있을 것인가. 오만함을 마음껏 누리는 것이야말로 권력이 그 보람을 만끽하는 최고의 순간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얻은 권력인데 그 최고의 꿀맛을 기꺼이 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

요즘 집권세력에서 야당 쪽으로의 권력이동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해 당사자들의 소회는 각별할 것이다.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가 아닌 일반 국민도 저마다 감회가 깊을 것이다. 최근 눈에 뜨이는 현상 중 하나는 새 집권세력에 대해서 오만하지 말라는 주문이 많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오만해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오만한 권력에 식상한 국민으로서 당연한 의견 개진임에 틀림이 없다. 또 권력을 개인적 성취욕의 충족보다 국민 복리를 위해 겸허하게 행사하라고 요청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새 집권세력이 깊이 새겨야 할 사안이다. 오만 다음에 오는 몰락을 보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구(舊)집권세력의 한 요인이 ‘실질적으로 유권자 30%의 지지를 받았으니 나머지 70%의 형편과 마음을 늘 생각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기권자를 모두 반대자로 간주하는 수상한 계산법으로 낸 수치다. 앞선 두 번의 대선에서 당선자와 차점자의 득표 차가 39만 표, 57만 표임에 비해서 이번에는 530만 표라는 엄청난 사실을 간과하는 계산법을 문제 삼자는 것이 아니다.

정치인들 겸허의 미덕 익히길

근소한 표 차로 집권한 후 투표하지 않은 다수파의 처지를 헤아리기는커녕 일삼아 적대시한 집권세력에 대해서 어째 한마디도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점령군 소리를 듣던 사람들이 이제야 분별력이 생겨 권력의 오만을 지적하는 것을 보며 정권 교체의 절대적 필요성을 통감한다. 정권 교체는 자연스레 구정권의 부정과 비리를 밝혀주는 것 외에도 구집권세력에 분별력을 길러주는 미덕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조선조의 사대부들은 대개 귀양 가서 시인이 되고 학자가 되었다. 권력이동을 계기로 정치인들이 겸허의 미덕을 익힌다면 정치의 성숙에 기여할 것이다.

유종호 문학평론가·전 연세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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