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권]아직도 현장마인드 못 깨달은 ‘전봇대’ 공직자

  • 입력 2008년 1월 22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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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18일 오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전봇대’ 발언이 알려진 직후 전남도의 한 간부는 기자들에게 “2004년 시작된 지중화 사업이 80% 이상 진척돼 큰 문제는 없다”고 설명했다.

일부 기자는 그의 말을 믿고 ‘그대로 서 있는 전봇대’와 도로를 가로지르는 전선, 가로등, 도로 표지판이 즐비한 ‘현장’을 놓쳤다. 기자도 그날 오후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더라면 ‘본질’을 놓칠 뻔했다.

발품을 팔아서 본 ‘현장’은 사뭇 달랐다. 대형 선박블록을 실은 트랜스포터(300t급 운송용 중장비)가 전봇대와 교통표지판을 피해 아슬아슬한 곡예운전을 하는 걸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이 당선인이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걸림돌이 되는 탁상행정의 사례로 대불산단 전봇대를 꼽은 지 나흘이 지났다.

그 사이 간선도로변 전봇대 2개가 빗속 작업을 통해 뽑히거나 옮겨졌다. 당초 4월에 옮길 예정이던 다른 전봇대 6개도 금명간 옮겨질 것으로 보인다.

현장의 공직자들은 ‘전봇대 화두’를 계기로 무얼 느꼈는지 궁금해 전화를 걸었다.

전남도의 그 간부는 21일 “현장감이 떨어졌다는 지적은 일부 수용한다”면서도 “그동안 업체 사장들을 안 만난 것도 아니고…”라며 억울해했다. 그는 “올해 계획사업을 마치면 95% 정도는 해결된다는 말이 결코 거짓은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한국전력의 현장책임자 또한 “전봇대만 문제인 것처럼 보도되는 데 불만이 많다”며 “도로변 시설 정비는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먼저 서두를 일이고 한전은 따라가면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많은 공직자가 아직도 “우리 잘못만이 아니다” “우선순위가 있는 것 아니냐”며 현장과 본질을 한꺼번에 놓치고 있었다. 책상에 앉아 공급자 논리만을 고집하는 한 물류가 막혀 원가 부담이 늘고 수출경쟁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공직자들이 먼저 ‘마음속의 전봇대’부터 뽑아내야 한다. 그래야 현장을 가게 되고 수요자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된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 사회 도처에 있는 규제의 전봇대들도 뽑힐 것 같다.

“현장에 있을 때 문제의 핵심이 잡히고 해결책도 나온다”는 이 당선인의 말은 그런 점에서 정곡을 찌른다.

김권 사회부 goqu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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