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유윤종]스머프 마을에서

  • 입력 2008년 1월 17일 19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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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모교 캠퍼스 풍경은 살갑지만 쓸쓸하다. 예전에 항상 다니던 동아리방과 도서관 사이의 길목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20년 전쯤 봄 축제 때 이곳에는 약간은 생뚱맞게 ‘스머프 마을’이라는 팻말이 들어섰다.

당시 뭔가 마음에 걸리면서도 반가웠다. 볼거리라야 판에 박은 듯한 민속장터 정도이고, 종내는 ‘지랄탄’ 발사로 막을 내리는 것이 전부였던 1980년대 대학가 축제에서 그나마 상상력을 발휘한 행사로 느껴졌던 때문이다.

그 ‘스머프 마을’은 알록달록한 버섯 집 대신 약간 우울해 보이는 몇 채의 천막이 전부였다. ‘스머프’를 내건 이유 역시 짐작대로였다.

당시 TV에서 방영되던 만화영화 ‘개구쟁이 스머프’는 파란색 요정 ‘스머프’들이 사는 평화로운 숲 속 마을이 무대였다. 이들의 최대 위협은 스머프들을 잡아 수프로 끓여 먹을 궁리에 골몰하는 마법사 ‘가가멜’이다. 그러나 위협이 닥칠 때마다 이들은 지도자인 ‘파파 스머프’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이겨 낸다.

이 줄거리를 들여온 축제 마당의 ‘스머프 마을’이 뜻하는 바는 다음과 같았다.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가가멜’이 있다. 미국이다. 가가멜의 위협도 똘똘 뭉쳐 이겨 내는 ‘스머프 마을’ 같은 나라가 북한이다. 가가멜과 한패인 고양이 ‘아즈라엘’은 남한의 군사정권 정도가 될 것이다….

왜 하필 스머프 마을일까. 당시 유럽에서도 ‘스머프’가 공산주의를 암시한다는 소문은 있었다. 그러나 유독 한국의 운동권 대학생들이 스머프를 택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파파 스머프’는 항상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 스머프들은 그의 말을 따라 항상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내용은 당시 대학가에서 세를 넓혀 가면서도 아직 공개적으로 거론되지는 못했던 ‘수령론’의 핵심과 일치했던 것이다.

‘스머프’의 작가가 북한 체제를 보았다면 ‘바로 스머프 마을이구나’라고 기뻐했을까? 아니, 양쪽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었다. 모두가 힘을 합치는 스머프 마을에도 유독 친구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주인공이 있다. 바로 잘난 척하는 ‘똘똘이’다. 똘똘이의 장기는 “너희들 알지, 파파 스머프도 말씀하셨어…”라며 파파 스머프의 말을 교조화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같은 시도는 통하지 않는다. 누구에게 걷어차였는지 휙 날아가 바닥에 처박히기 일쑤다.

항상 동글동글한 어린 요정으로 남아 있을 것 같은 스머프들도 올해 50세가 되었다고 외신은 전한다. 그동안 공산권은 붕괴했고, 한국의 386은 한때 정권의 핵심 주역이 될 정도로 성장했다. 시간의 무상함을 실감하게 한다.

그래도 모교 교정에 선 지금처럼 세월이 정지한 듯한 순간들이 있다. 원내의석 9석의 제도권 정당에서 아직까지 ‘종북(從北)주의 청산’ 같은 말이 들릴 때가 그렇다. 추종할 만한 무엇이 남아 있기에 ‘종북’해 왔다는 것일까. 정치 경제에서부터 사소한 생활상식에까지 ‘위대하신 누구누구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를 되뇌는, 모두가 ‘똘똘이’가 되어야 하는 체제를 추종했다는 것인가.

나아가 예전 모습을 청산할 바에는 ‘국가신인도 추락시킬 투쟁을 하겠다’는 세력과도 아예 관계를 멀리했으면 좋겠다. 1980년대가 이뤄낸 남길 만한 성과는 남기고, 거북한 부산물들은 걷어낼 때도 되지 않았는가.

유윤종 국제부 차장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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