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원재]CEO들의 신년사

  • 입력 2008년 1월 3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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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경쟁의 현장에서 기업의 존망을 걸고 승부를 벌여야 하는 최고경영자(CEO)가 내놓는 신년사는 가볍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기업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메시지이기도 하거니와, 이들의 말 자체가 경제의 선행지표로 읽히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10년’에서 벗어나 기력을 되찾은 2004년, 일본 CEO들의 신년사 화두는 불황 탈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전진과 개선’(도요타자동차) ‘성장에 대한 집념’(히타치제작소) ‘새로운 발전을 향한 출발’(마쓰시타전기)….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일본 기업인들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의 개혁 성과에 고무돼 움츠렸던 어깨를 편 것이다.

▷올해 국내 주요 기업 CEO들의 신년사는 미래경영과 공격경영으로 요약된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은 ‘미래를 향한 도약’, 구본무 LG 회장은 ‘일등 LG’, 최태원 SK 회장은 ‘더 빠른 변화’를 선창(先唱)했다. 허창수 GS 회장은 “투자를 두려워 말라”고 했고, 조석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여는 원년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무현 정부의 출범을 목전에 두었던 2003년 정초와는 사뭇 다르다. 당시 김각중 전경련 회장은 장차 부닥치게 될 험로를 예상이라도 했던 듯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어 달라”고 정부에 요망했다. 그러나 그 후 지난해까지 국내 CEO들의 신년사에는 늘 ‘위기감’이 배어 있었다.

▷오랜만에 국내 CEO들의 의욕에 찬 목소리를 들으니 반갑다. 그들이라고 올해 대외 경제여건이 좋지 않다는 점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Friendly)’ 정부를 만들겠다고 약속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기대가 큰 듯하다. 노 대통령도 “경제의 절반은 심리”라는 말을 곧잘 했다. 문제는 그런 말을 아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심리를 어느 쪽으로 이끄느냐가 중요하다. 이 점을 노 대통령도 지금쯤 깨닫고 있을까.

박원재 논설위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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