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유윤종]평양의 아메리카인들

  • 입력 2007년 12월 21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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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공종식 특파원, 잘 지내십니까.

지난번에 쓰신,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내년 2월 평양에서 공연한다는 기사를 잘 읽었습니다. 뉴욕 필이 “평양에 함께 가자”고 제안하진 않던가요.

저도 뉴욕 필 공연을 현장에서나 방송으로 지켜볼 북한 주민들의 표정이 궁금합니다. 기사를 본 사람 대부분은 미국 국가가 연주된다는 데 관심을 갖는 듯하지만, 연주곡목 중 거슈윈의 ‘파리의 아메리카인’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 곡 마지막 부분에서는 1920, 30년대 미국의 찰스턴 스윙 선율이 느닷없이 트럼펫 솔로로 울려 퍼집니다. ‘스탈린주의 트루먼 쇼 세트’에 갇혀 살아온 북녘 주민들에게는 이 자유분방한 멜로디가 꽤 ‘방자하고 타락한’ 음악으로 들릴 것 같습니다.

미국과 평양이 탁구나 다른 무엇이 아닌 ‘필하모니’로 교류의 문을 연다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역사적으로 필하모니라는 제도에는 공산주의가 청산하려 한 부르주아 계층의 성취 욕구가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산업혁명의 결과로 많은 인력을 고용한 공장주들이 등장하면서 19세기 유럽과 미국의 주요 도시에는 관(官)의 간섭 없이 민간의 힘으로 오케스트라를 지원하는 필하모니(화음사랑) 협회가 잇따라 생겼습니다. 콘서트홀은 부르주아의 사교장이었고 이들의 부는 악단을 뒷받침했습니다.

특히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필하모니의 활동은 더욱 활발해 수많은 일류 악단과 작곡가들을 탄생시켰습니다. 시민계급의 정치 참여가 좌절돼 배출구가 필요했던 것도 한 이유였겠죠. 독일 라이프치히의 대표 연주회장 이름이 ‘게반트하우스(직물인의 집)’라는 점도 당시 콘서트홀을 세우고 채운 사람들이 누구였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유럽과 달리 부르주아의 정치 참여가 활발했던 미국도 잇달아 필하모니를 세웠습니다. 1842년 설립된 뉴욕 필은 미국에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필하모니 중 최고(最古) 악단입니다. 다른 악단들처럼 이 악단도 조상의 유산 대신 스스로의 근면과 노력으로 고귀해지고자 했던, 봉건 기득권층에 대한 반항의 정신을 담았던 독일 오스트리아 시민 계층의 음악을 주로 연주했지요.

20세기를 휩쓴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이들 부르주아 계층을 뒤엎으려는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혁명의 시대는 공산권 붕괴와 함께 막을 내렸고, 북한 정도가 그 시대의 박제된 전시장으로 남았습니다. 혁명가들이 전복하려 했던 시민 계층은 글로벌 시대를 맞아 전 세계를 누비며 온갖 제약을 해체하는 ‘기업가들’로 변신했고 오늘날 그 어느 시대보다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같은 역사적 맥락은 세월의 변화 속에서 희미해진 게 사실입니다. 평양과 교류가 있었음 직한 옛 공산권의 몇몇 악단도 형식적이나마 ‘필하모니’의 이름을 달고 있었지요. 오늘날 뉴욕 필의 공연을 보려고 맨해튼의 링컨센터를 찾은 관광객도 옛날처럼 시가를 뻐끔대는 상공인들의 회합을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성공했던 ‘시민들’의 문화유산이 마지막으로 남은 ‘실패한 평등주의자’들의 나라에 화해의 손을 내밀기 위해 찾아간다는 사실이 제법 큰 감회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유윤종 국제부 차장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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