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오공단]언론통제 브리핑룸 있는 한은…

  • 입력 2007년 11월 1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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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 호주 미국의 학자, 저널리스트, 정부 관리, 연구원 등 40여 명이 참가한 회의를 주관했다. 3년 전에 발족시킨 아시아 테러리즘 연구협의회(Council for Asian Terrorism Research)의 6차 회의였다. 참가자 전원이 사흘간 허심탄회하게 극렬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영향을 방지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 진지한 모임이었다.

이번 회의의 주제는 테러리즘과 미디어의 역할이었다. 미디어는 테러리즘을 확산시킬 수도 있고, 방지할 수도 있는 양날의 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다들 인정했다. 각국의 저널리스트가 모인 자리여서 적극적인 자세와 역공으로 이어지는 토론을 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의 원탁토론에서는 내가 의장 노릇을 맡았다. 말을 길게 하고 의장 허락 없이 발표하는 이들을 감안해 교통경찰 역할을 하기 위해서였다. 원탁토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회의 경비를 지원한 미 연방정부 대표단이 벙긋거리며 기뻐했다.

‘한국의 민주주의’ 질문에 난감

파키스탄의 학자와 저널리스트도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전국이 비상 계엄령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회의 내내 대통령이자 육군의 우두머리인 페르베즈 무샤라프와 파키스탄의 장래에 관심이 쏠렸다. 파키스탄 전문가들은 회의에 불참했지만 대신 아프가니스탄과 인도의 전문가들이 좋은 분석과 견해를 내놓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파키스탄 군부가 예전과 달리 민주주의 향방에 대해 무샤라프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게 아니라 분열 조짐을 보인다는 진단이었다. 그리고 공부에만 몰두하던 대학생, 돈 벌기에 정신없던 변호사들이 무샤라프 통치에 반기를 들기 시작한 것은 새로운 발전의 첫걸음이라고 했다.

파키스탄의 현재와 과거 한국의 군사독재정권을 비교하는 토론도 있었다. 누군가가 물었다. “한국은 이미 완전한 민주주의라고 보는데 당신은 동의하는가?” 대답을 정확히 하기 위해 확인을 요청했다. “어떤 의미로 완전하다고 보는가?” 그가 말했다. “미디어의 완전한 자유, 대통령 권한의 감시제도 확립, 그리고 제도화된 선거제도의 운영을 의미한다.” 나는 그렇다고 얘기할 자신이 없었다.

한국에서 미디어는 과거와 비교하면 견줄 수 없을 만큼 자유스러워졌다. 미디어 세계가 너무 방만해져 3류 미디어의 속출이 문제라고 어느 한국인 학자가 말한 적도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최근 결정, 즉 국가 브리핑 룸의 일원화는 시대와 역행하는 불행한 결정이다.

정부는 미디어에 공평하고 공정한 바른 정보를 브리핑해야 한다. 최근 미국에서는 정부가 브리핑을 통해 언론에 나갈 정보를 극도로 통제해 미디어가 정확한 기사를 쓰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다. 한국 역시 단연코 문제가 있다.

대통령의 권한을 감시할 제도는 한국에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청와대의 많은 정책결정과 대통령의 언행이 이런 제도를 무시하고 이뤄졌다. 대통령을 견제할 제도의 존재와 대통령 권한의 올바른 행사는 별개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영국 BBC 방송은 경찰과 군인에게 멱살을 잡히는 파키스탄의 젊은 변호사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놀랍게도 아주머니 군단이 역시 총과 몽둥이를 든 군대와 당당히 맞서고 있었다. 인도 저널리스트가 냉정하게 말했다. “젊은 변호사들, 가족이 있는 아주머니들이 무샤라프와 맞서는 이상 파키스탄의 장래 민주화는 밝은 도정에 있다.”

시대 역행하는 불행한 결정

한국의 경우 선거제도를 존중하고, 제도 속에서 국가대표 역할을 해야 하는 대통령을 선출하는 제도에 약점이 있다. 정당의 이념을 대표하는 사람이 뽑히지 않고,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된 후보를 제쳐 놓고 마지막 판국에 뚱딴지같이 독립 후보가 되어 대통령을 해 보겠다고 나서는 분이 있다. 국민소득은 파키스탄의 거의 10배가 넘는 한국이 정치문화에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느낌이다.

오공단 미국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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