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주철환]나눔의 삶, 위대한 성공

  • 입력 2007년 11월 14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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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가 났다. 두 운전자가 차에서 나온다. 심하게 다툴 것 같은 분위기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겠지. 그러나 반전이 있다. “제 잘못이에요.” 정중히 사과하는 운전자에게 상대편은 과장된 어조로 답한다. “무슨 말씀. 제 잘못이죠.” 최근 TV 방송을 탄 자동차보험 광고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천사라면…’이란 CM 노래 가사까지 선명히 떠오르는 걸 보면 일단 성공한 광고임에 틀림없다.

이 광고는 요즘 성공학 강사들이 쏟아 내는 강의와 대조적이다. 그들은 ‘착한 사람보다는 똑똑한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천사보다는 천재가 더 행복할 것이라 여기는 듯하다. 성공의 의미보다 성공의 기술을 가르친다. 왜 성공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은 강의에서 과감히 생략된다.

하지만 성공이라는 목적지로 가는 빠른 길과 속성으로 운전기술만 익힌 사람은 곳곳에서 사고를 일으킨다. 어제의 성공이 오늘의 재앙과 연결되는 일이 잦은데도, 세상에 시한부 성공도 꽤 많다는 걸 경험에 비추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데도 천사보다는 천재를 지향한다.

착하게 살면 성공한다는 이야기는 이제 오래된 동화책에서나 읽을 수 있다. 드라마에서도 권선징악은 진부한 주제다. 예쁜 사람, 영악한 사람이 득세하는 ‘리얼 스토리’가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시청자가 갈수록 늘어 간다. 선행을 직접 소개하는 프로그램 제작자는 시청률에 아예 초연해져야 한다.

방송을 만드는 사람의 목표는 뭘까. 일차적으로는 시청자에게 유익한 정보와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방송에 나오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출연자는 시청자의 눈을 즐겁게 해 주고 똑똑하고 박식한 출연자는 알찬 정보로 생활에 도움을 준다. 그렇게 예쁘고 똑똑한 수많은 출연자가 쉽게 도달하기 어려운 먼 목적지가 있다. 바로 감동과 행복이다.

유익한 정보가 살림살이에 도움을 줄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곧 삶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외모가 출중한 출연자를 바라보며 느낀 즐거움 역시 감동이나 행복과는 깊이와 넓이가 다르다. 방송에 출연하는 이들 중에 스스로 이만하면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진정한 감동과 행복을 느끼게 하는 데까지 도달한 이는 얼마나 될까.

연예인을 공인(公人)으로 부르는 데 거부감을 지닐 수 있겠지만 말과 행동이 일반인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원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공인이다. 남 돕는 일을 즐기는 것으로 이름난 사람이 있다. 가수 김장훈 씨. 선행 기사가 최근 여러 미디어를 통해 소개됐다. 자선 행진에 마침표가 보이지 않는다. 괌 마라톤에서 10m마다 16달러를 기부하겠다는 약속을 지켜 총 8000달러를 저소득층 소년소녀 공부방에 기증했다. 그가 달린 5km는 사랑과 희망의 이정표다. 인품이 뒷받침되지 않은 공인으로서의 성공이 모래성처럼 쉽게 허물어진다는 사실. 그는 이미 예감하는 듯하다.

우리 사회에는 요즘 천사 같은 선행을 펼치는 사람의 진심을 못 믿는 분위기가 갈수록 커져 가고 있다. 그동안 ‘천사처럼 생긴 가면’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일까. 하지만 김 씨는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남을 행복하게 하려는 결심을 그저 발 빠르게 실천에 옮길 뿐이다.

같은 날, 또 한 사람의 마지막 모습이 그 감동 위에 겹쳐졌다. 시신을 기증하고 떠난 코미디언 김형곤 씨. 그는 평소에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인생은 거울이다. 내가 웃으면 인생도 따라 웃어 준다.” 공인으로서 진정 성공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쉽지는 않지만 답이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주철환 OBS 경인TV 대표이사 전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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