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전원책]사회 좀먹는 ‘나이롱’들

  • 입력 2007년 11월 13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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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사내가 사무실로 찾아왔다. 차를 추돌당했는데 자신은 입원 중이라 했다. 처음엔 목이 아프다가 지금은 하반신 통증으로 거동을 못한다고 했다. 입원 중이고 거동을 못한다는 사람이 부축도 받지 않고 씩씩하게 변호사 사무실을 오는 모습이 신기했다. 추돌당했다는 차의 외관은 사진으로 봐선 깨끗했다. 의사 소견은 처음엔 2주 진단이었는데 4주로 늘었다. 속칭 ‘나이롱환자’일 가능성이 높다.

가벼운 접촉사고에도 입원

언젠가 나도 교통사고를 냈다. 차가 밀려 서 있는 중에 딴 생각을 하느라 제동장치에서 발을 떼는 바람에 살짝 앞차에 닿았다. 앞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목이 아프다고 했다. 나는 보험회사에 사고를 접수시켰다. 경찰은 도무지 사고 같지 않은 사고를 확인한 뒤 그냥 가버렸다. 앞차 주인은 원래 너덜너덜하고 낡은 뒤 범퍼를 갈고 두 사람은 2주 진단을 받았다.

이 살벌함을 나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세상이 각박함을 넘어서 다들 충혈된 눈으로 미쳐 날뛰는 것만 같다. 어떤 계기만 있으면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써 대는 억지를 어떻게 봐야 하나.

손해보험협회 자료를 보니 교통사고 뒤 입원한 환자는 일본의 경우 10% 미만이다. 한국은 무려 70%다. 우리 자동차가 깡통이 아니라면 일본과 차이가 나는 60%는 ‘도덕의 차이’거나 ‘양심의 차이’다. ‘나이롱’ 인간이 많다는 얘기다. 정밀진단을 해서 아무런 상해가 없는데도 고통을 호소해 입원한 환자가 부지기수이니 현대의학으로도 쉽게 드러나지 않는 상처를 입었단 말인가.

그렇게라도 해서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편하게 벌겠다는 걸 두고 그저 세태와 인심이 고약해졌다고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건 명백한 사기다. 사실 이런 가짜 교통사고 환자와 전혀 다를 바 없는 나이롱이 우리 사회 어느 곳에든 있다. 우연히 알게 된 남의 비밀은 언제든 돈이 된다. 워낙 편법이 기승을 부려서 학연 지연 혈연 등 온갖 인연으로 얽혀 살다 보니 가끔은 편법을 쓴 것이 그만 목구멍에 턱 걸린 생선가시가 되어 패가망신한 이가 얼마나 많은가. 그 생선가시가 된 꼬투리마다 질기디 질긴 나이롱이 함께 박혀 있다.

기업 안에서 온갖 단물을 빨아먹은 뒤 내부자 고발이라는 미명 아래 기업주를 협박하고 그게 용이치 않으면 정의의 사자라는 탈을 쓰고 변신한다. 단서를 잡힌 기업주는 영락없이 염라대왕 같은 나이롱 앞의 죄인이다.

놀라운 점은 나이롱이 제비족이나 꽃뱀과 하등 다를 게 없는 자인데도 그런 변신은 ‘양심’으로 상찬된다는 사실이다. 정의를 위해서 불의를 고발한 용감한 이들이 정말 정직했다면, 왜 불의를 알았을 때 나서지 않고 함께 단물을 빨았는가.

노골적 협박… 사람이 무서워

기업뿐 아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조직에 그런 나이롱이 은신해 암약 중이다. 심지어는 학교나 교회에서까지 한 건을 위해 잠복해 있다. 모텔을 출입하는 남녀의 사진을 찍어 돈을 뜯어내고, 달리는 차 앞에 돌진해서 교통사고를 만들어 내는 이 사회가 정말 무섭지 않은가. 그런 자들을 지금까지 용하게도 만나지 않고 살아왔다면 참으로 행운이다.

불량한 심보를 가진 60%가 무너뜨린 신뢰 기반을 건강한 양심을 가진 40%가 받치고 있기에는 너무 부담이 크다. 나이롱에게 한 번이라도 당해 본 이들은 대가를 치른 것이 크든 작든 사람을 무서워하게 된다. 사람이라는 동물이 어떤 야수보다도 무섭다는 것이다. 그런 야수 같은 나이롱이 시켜 주는 도덕재무장이 결코 좋은 운동으로 내게는 보이지 않는다.

전원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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