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10년]<1>또다시 들려오는 경보음

  • 입력 2007년 11월 1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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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그날 10년 전 외환위기는 한국사회의 모든 분야를 뒤흔들었다. 1997년 12월 3일 임창열 당시 경제부총리(가운데)가 IMF와 구제금융 협상이 타결됐음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이경식 당시 한국은행 총재, 오른쪽은 미셸 캉드쉬 IMF 총재. 동아일보 자료 사진
10년 전 그날 10년 전 외환위기는 한국사회의 모든 분야를 뒤흔들었다. 1997년 12월 3일 임창열 당시 경제부총리(가운데)가 IMF와 구제금융 협상이 타결됐음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이경식 당시 한국은행 총재, 오른쪽은 미셸 캉드쉬 IMF 총재. 동아일보 자료 사진
단기외채 급증 - 국제금융 경색 10년전과 비슷

《지금부터 약 10년 전인 1997년 11월 21일 한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대한 구제금융 신청을 공식 발표했다. 이어 12월3일 양측은 협상을 타결했다. 흔히 ‘IMF 사태’로 불리는 ‘IMF 관리체제 편입’의 시작이었다.

한국 경제가 안고 있던 △고비용 저효율의 경제구조 △무분별한 단기외채 도입 △기업들의 방만한 차입경영과 관치금융 △전투적 노사관계 등이 같은 해 7월 태국에서 촉발된 아시아 외환위기와 맞물리면서 초래된 한국의 외환위기는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를 뿌리째 뒤흔들었다.

금융회사에 진 빚을 갚지 못한 대기업이 잇따라 쓰러졌고 부실이 쌓인 은행들은 강제로 다른 은행에 통폐합되거나 외국자본에 팔렸다. ‘평생 직장’ 관념이 무너지면서 많은 근로자가 회사를 떠났고 직장인들의 관념에도 변화가 생겼다. 정치적으로는 그해 12월 대통령선거를 통한 사상 첫 여야 간 정권교체와 김대중 정부의 탄생을 가능케 한 변수로도 작용했다.

한국은 외환위기의 직접적 충격에서 비교적 빠른 속도로 벗어났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하지만 새로운 불안요인과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외환위기 10년을 맞아 한국사회의 오늘과 내일을 시리즈로 짚어본다.》

지금 한국 경제에서 외환위기 때의 모습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 후 4년이 안 된 2001년 8월 ‘IMF 관리체제’에서 완전히 졸업했다.

10년 전 환율 방어 등을 위해 보유 외환이 바닥나기 직전까지 갔던 것과 달리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세계 5위 수준이다. 기업 부채비율은 크게 낮아졌고 일부 대기업의 경쟁력은 높아졌다.

하지만 좀더 들여다보면 곳곳에 불안요인이 눈에 띈다.

경제의 성장동력은 크게 약화돼 경제성장률은 아시아 주요 경쟁국은 물론 세계 평균에도 못 미친다. 젊은이들의 취업난과 갈수록 비대해지는 공공부문의 문제도 걱정거리다.

최근에는 배럴당 100달러에 육박한 국제유가, 세계적 달러화 약세 현상에 따른 원화가치 상승(원-달러 환율 하락),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파장, 반도체 가격 급락 등 복합 악재가 몰려오고 있다. 이 때문에 외환위기와 같은 충격까지는 아니더라도 잘못 대처할 경우 새로운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직접적 충격은 비교적 빨리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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