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허영]상처 받은 ‘헌법 시스템’ 고쳐야

  • 입력 2007년 10월 29일 03시 08분


코멘트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는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사람은 시스템을 운용하는 조종사요 기능인에 불과하다. 시스템은 주권자인 국민이 만든 헌법으로 정해진다. 그런데 헌법의 시스템은 정상적인 사고방식과 건전한 판단능력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운용되는 것을 전제로 하는 통치의 메커니즘이다.

엉뚱한 역발상에 집착해 돌출행동을 일삼는 사람이 시스템의 선장 노릇을 하는 경우 헌법은 정치 생활의 큰 흐름을 규범적으로 주도하지 못한다. 헌법 규범과 헌법 현실 사이에 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지금 헌정질서가 혼란 속에 빠진 이유도 엉터리 선장이 야기한 괴리 현상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 근거인 헌법을 조롱하고 무시하며, 국민 뜻과는 다른 저자세 대북 정책에 매달리면서 통치경계선을 마음대로 좁혀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하고, 사감(私感) 때문에 언론자유를 짓밟으며, 공직을 터무니없이 늘려 공직구조를 기형아로 만들고, 인기영합적인 당근 배분 정책으로 나라 살림을 빚더미에 올려놓았다.

또 좌파세력을 조직적으로 키워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며, 국민 통합을 깨는 언행을 일삼고, 헌법기관의 정당한 경고를 무시하며, 혼자 청렴하고 정의의 화신인 양 반칙과 부정부패를 규탄하면서도 주위 충신의 부정부패는 오히려 감싸려 들었다. 불리한 여론에는 귀를 막으며, 글로벌 시대에 북한식 ‘우리끼리’ 민족주의에 빠져 우방을 늘리기는커녕 그나마 있는 우방마저 등 돌리게 만드는 등 끝없이 이어지는 위헌적인 돌출 행동으로 헌법 규범과 헌법 현실의 틈은 크게 벌어졌다.

참여정부 이후 헌정질서 혼란

헌정질서에서 어느 정도의 틈은 치유가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는 오늘의 틈은 거의 치유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 있다. 헌법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좌절과 당혹감을 크게 느끼는 이유이다. 독선적인 엉터리 선장을 만났을 때 대통령제라는 배는 침몰 직전까지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하면서 효과적인 시스템 보완을 고민하게 된다.

대선을 50여 일 앞두고 이번에는 국민이 정신을 차려, 정말 다시는 엉터리 선장을 뽑아서는 안 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되풀이한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닐 성싶다. 평소의 생각과 투표 사이에 어차피 괴리는 생기기 마련이다. 연고주의가 유달리 강한 우리 사회에서 연고가 기표행위에 미치는 강한 자력을 과감히 떨쳐 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폭한 선장을 만나도 쉽게 요동치지 않도록 시스템을 고치는 수밖에 없다. 선장에 대한 통제장치를 강화하는 일이 급선무다. 지금은 무능한 국회와 선장의 집요한 코드인사 때문에 통제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문제이다.

국회는 이합집산과 엉뚱한 정쟁에 매달려 선장에 대한 통제를 포기한 상태다. 사법부는 코드인사로 절름발이 상태다. 미국 유럽 등 정치 선진국과 달리 아직도 의리와 보은정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우리 정치문화에서 코드인사의 폐해는 매우 심각하다.

그렇다고 당장 헌법을 고치기는 쉽지 않다. 법률이나 관행을 고쳐 해결할 수 있는 길부터 먼저 찾아야 한다. 우선 국회의 인사청문 절차를 강화하고 실세 권력기관인 빅4(국가정보원장 국세청장 검찰총장 경찰청장)에 대한 인사청문 결과를 인사권자가 반드시 존중하도록 법률을 고치거나 인사 관행을 확립하는 길이 가장 손쉽고 효과적인 시스템 보완책이다.

‘난폭한 선장’ 통제장치 시급

장기적으로는 다음 대통령이 자신의 헌법상 인사권을 크게 줄여 국회의 통제를 받게 하는 등 필요하고 합리적인 개헌안을 마련해서 개헌을 성사시키도록 노력하는 방안이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이다.

누구나 자기 몫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정말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는 대통령이라면 우리 헌정질서의 안정과 자신의 탈선 방지를 위해서도 쓴 약을 과감하게 먹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지도 아량도 없는 사람이 대통령으로 뽑혀 앞으로 5년간 또 시스템 혼란을 야기한다면 우리의 대통령제는 머지않아 운명을 다하게 될 것이다.

허영 헌법재판연구소 이사장·전 연세대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