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심규선]하쿠나 마타타, 라이온 킹

  • 입력 2007년 10월 25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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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거스르며 갑자기 기온이 내려갔던 지난 토요일 오후. 늘 붐비던 서울 잠실롯데월드 주변도 기분 탓일까 약간은 스산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롯데호텔 옆 샤롯데 극장의 무대는 변함없이 아프리카의 열정을 쏟아 내고 있었다.

극단 시키(四季)의 뮤지컬 ‘라이온 킹’. 28일이면 330회 공연으로 막을 내린다. 지난해 10월 28일 오픈 런에 들어간 지 꼭 1년 만이다. 관객은 22만 명을 넘어섰다.

반발 속에 시작한 공연의 교훈은

시작할 때는 말도 많았다. 국내 첫 뮤지컬 전용극장을 일본 극단에, 그것도 무기한으로 내줄 수 있느냐는 정서적 반발이 심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옳지 않다. 일본 문화의 정수라는 ‘가부키’와 ‘스모’가 국립극장과 장충체육관에서 공연된 게 벌써 몇 년 전이다. 미국 원작을 한국 배우가 공연하는데도 공연 주체가 일본 극단이라는 이유로 극장 대관까지 걸고넘어진 건 옹졸했다.

티켓 값을 내린다고 하니 관객을 싹쓸이해 갈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있었다. 라이온 킹은 국내 대형 뮤지컬의 최장기 공연 기록(아이다·8개월 275회)을 경신했다. 그렇지만 국내 뮤지컬 시장은 올해도 성장했다. 한국뮤지컬협회가 “극단 시키가 한국 공연계를 정벌하고 대대손손 이 땅을 공연 식민지로 고착화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한 주장은 기우였다.

‘라이온 킹’ 1년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일부에선 “1년밖에 롱런하지 못한 데다 투자금도 회수하지 못했으니 실패한 공연”이라고 말한다. 그런 평가는 1년 전의 예상처럼 성급하다.

라이온 킹은 이국적인 멜로디, 강렬한 몸짓, 몽환적인 무대 디자인, 몸과 하나가 된 창의적인 가면과 소도구, 현란한 원색으로 우리를 자연스럽게 아프리카 초원으로 흡인한다. 거기에다 인류의 보편적인 감정인 환희, 사랑, 질투, 희망, 도전의 스토리를 적절하게 배치해 놓고 있다. 그래서 ‘가족 관객’이 쉽게 이해하고, 모두 감탄한다.

그런 훌륭한 무대를 이끈 것은 극단 시키가 선발해서 훈련시킨 한국의 젊은 배우들이었다. 라이온 킹에 출연하는 배우는 국내 무대에서 가차 없이 배제하겠다는 ‘협박’은 통하지 않았다. 국내 극단들은 라이온 킹의 실패를 얘기하기에 앞서 극단 시키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를 따져 보는 게 생산적이다.

한국 공연에서 ‘손해’를 봤다면 그건 극단 시키가 고민해야 할 몫이다. 공연 풍토나 마케팅, 배우 기용이나 예약문화 등에서 예측이 빗나갔을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현지 사정에 적응하지 못하고는 대박을 터뜨릴 수 없다. 공연은 예술이지만 마케팅은 전쟁이다.

‘하쿠나 마타타.’ 라이온 킹 1막의 마지막 대목에 나오는 대사다.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다. 역경에 빠진 어린 사자 ‘심바’는 이 말을 들으며 청년 사자로 훌쩍 성장한다. 극단 시키는 ‘하쿠나 마타타’라는 말로 스스로를 격려해도 좋다. 일본 극단의 한국 진출은 이제 1막이 끝났을 뿐이다. 앞으로 ‘일본 극단이라서 안 된다’는 소모적인 논쟁은 없을 것이다. 이도 라이온 킹 덕분이다.

문화의 넘나듦은 막을 수 없다는 것

라이온 킹의 등장과 퇴장을 보며 ‘한일축제 한마당’이라는 이벤트를 생각한다. 매년 열리는 이 행사는 2005년 대학로에서 시작됐다. 처음 이 행사를 준비하던 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 관계자는 “걱정이 태산 같다”고 했다. 반일감정 때문에 행사가 실패하면 어쩌나 하고. 그러나 올해 이 행사는 서울의 한복판인 서울시청 앞과 청계광장까지 진출했다. 이 행사는 말한다. 이국 간의 문화교류는 이제 정치논리나 민족감정으로는 막을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라이온 킹의 포효는 끝났다. 그러나 엄마 아빠와 함께 라이온 킹을 봤던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면 자기 아이의 손을 잡고 다시 한 번 라이온 킹의 포효를 듣고 싶어 할지 모른다. 아빠 사자왕 ‘무파사’가 어린 아들 ‘심바’에게 들려줬던 말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나는 죽어도 네 안에 살아 있단다.”

심규선 편집국 부국장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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