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의 억지주장에 이용되기 시작한 頂上선언

  • 입력 2007년 10월 22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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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해군사령부가 어제 우리 해군이 북 영해를 침범했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10·4 남북 공동(정상)선언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한 것은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북은 “남북이 ‘정상선언’에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의 설치와 공동어로구역 설정에 합의한 오늘까지도 (남이) 영해를 침범하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서해 북방한계선(NLL) 무효를 기정사실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목표 달성을 위해 집요하게 논쟁거리를 만들고, 논의 과정에서 꼬투리를 잡아 사안을 자신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끌고 가는 북 특유의 전략이다. 북이 NLL 문제를 처음 들고 나온 것이 1973년이다. 무려 30년이 넘도록 줄기차게 문제를 일으킨 끝에 마침내 정치, 군사적으로 크게 이익이 되는 NLL 무효 주장까지 하게 됐으니 성공한 셈이다.

북과의 대화나 회담에는 항상 이런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평양 정상회담에서 이런 점까지 염두에 뒀어야 했다. 부주의한 합의나 발언이 우리의 선의(善意)와는 다르게 비수가 되어 돌아온 예는 무수히 많다. 그때마다 뒷감당하는 국민만 힘들었다.

북한의 영해 침범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북한은 올해 들어 이런 주장을 담은 성명을 모두 5차례나 발표했다. 그러나 국방부에 따르면 오히려 북이 올해 들어 17차례나 NLL을 침범했다. 그러고서도 우리 군의 정당한 영해 수호 활동을 불법 행위로 몰아가고 있다.

10·4 정상선언 어디에도 NLL을 부인하는 조항은 없다. NLL이란 단어조차 들어 있지 않다. 그런데도 북이 이렇게 나오는 이유는 혹시나 노 대통령이 평양에서 이면합의라도 해 준 때문은 아닌지, 분명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정상회담 이후 정부는 북한을 감싸기에 급급하다. 다수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NLL 논의 가능성이 굳어지고 있다. 노 대통령과 이재정 통일부 장관도 “NLL은 영토선이 아니다”고 했다. 경협 준비도 착착 진행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북으로 하여금 터무니없는 주장까지 하게 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다음 달 평양 국방장관 회담을 꼭 해야 할지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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