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병민]원어민 영어강사 검증할 때다

  • 입력 2007년 10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10년간 영어를 배워도 외국인과 대화 한번 제대로 나눠 보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입 한번 떼기 어려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외국인을 동경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에 대한 반작용일까? 그렇게 영어교육을 받은 우리는 원어민에게 영어를 배우면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은 기대를 갖고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는 원어민에게 최대 영어시장이 됐고 원어민 영어 강사가 10여만 명을 헤아린다. 대도시는 물론 남도의 작은 산골 마을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으로 영어학원이 없는 곳이 없다. 이들 학원의 상당수를 원어민 강사가 채워 가고 있으니 영어 열풍이 지속되는 한 원어민이 얼마나 더 필요할지 알 수 없다.

무자격 외국인 강사 활개쳐

이런 원어민 강사들이 과연 교실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들은 무슨 동기로, 어떤 목적을 갖고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일까? 그들은 어떤 가치관과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으며 영어권 언어와 문화를 가르칠 만한 교육과 훈련은 받은 것일까? 어린이를 성추행한 경력이 있는 강사가 버젓이 몇 년 동안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마약이나 기타 환각성 약물을 즐기는 강사들이 활개 치고 있는 현실은 매우 염려스럽다.

이미 오래전부터 일부 원어민 강사가 보여 주는 품행이나 자질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관광 비자로 잠시 들렀다가 돈을 벌기 위해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학교에는 캐나다에서 피자를 배달하다가 온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환상적인 대우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무조건 원어민이면 된다는 우리의 안이한 생각이 무자격 원어민 강사를 양산하게 된 것이다.

원어민 강사를 채용하고 관리하는 데도 문제가 많다. 현장에서는 원어민을 구하기 어렵고 일시에 대량으로 원어민을 구하다 보니 체계적으로 검증하고 걸러 낼 장치가 부족하다. 물론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지도 못하다. 그래서 대행사가 활개를 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채용이 이뤄지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원어민 강사들이 채용되고 그들이 우리 공교육과 사교육 현장을 장악하고 있다면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하다. 실제로 원어민이 어느 정도 교육 효과를 내는지 검증된 바도 없다. 또한 원어민이 있다고 하는 것이 혹시라도 우리 학교에 원어민 강사가 있다는 것을 내세우기 위한 전시행정은 아닌지 반성해 봐야 한다.

적은 학생을 데리고 수업하는 데에는 원어민이 어느 정도 기능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학교 교실과 같이 30∼40명의 학생을 데리고 하는 수업에서 준비 안 된 원어민 강사가 무엇을 해 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대부분의 원어민이 주로 하는 활동이 겨우 학생과 같이 놀아 주고 게임이나 해 주고 말 상대나 해 주는 정도라면 이들이 교실 현장에서 해 줄 것은 한계가 있다.

가치관 교육능력 따져봐야

영어를 가르치려면 원어민이라는 조건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다른 나라에 가서 당장 우리말을 가르치라고 한다면 과연 가능하겠는가? 가르치는 행위는 반드시 그에 필요한 교육과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무자격 원어민 강사가 넘쳐 나고 그들이 원어민이라는 이유로 우리 교실을 활개 치고 다니는 작금의 상황을 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런 식으로 원어민 강사가 채용되는 과정에서는 원어민이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

교육과 훈련을 강화해야 한다. 원어민이 영어 교육의 궁극적인 대안도 아니며 원어민이라고 마음 내키는 대로 영어를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병민 서울대 교수·영어교육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