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동성]장미밭의 찔레, 찔레밭의 장미

  • 입력 2007년 10월 1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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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에게는 연구와 교육 외에 학생지도라는 제3의 역할이 있다. 연구자와 강사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길잡이를 해 주는 스승으로서의 직분이 그것이다. 필자만 해도 일주일에 열 명 이상의 학생을 만나 논문지도나 진학지도, 나아가 인생 상담을 해 주고 e메일이나 인터넷으로 조언해 주기도 한다.

차근차근 올라간 사람이 리더로

찾아오는 이들에게 필자는 가끔 ‘장미’와 ‘찔레’의 이야기로 다양한 인생항로를 설명하곤 한다. 늦봄부터 초가을까지 끊임없이 작은 꽃망울을 터뜨리는 찔레꽃 같은 삶이 있는가 하면, 단 한 번 큰 꽃을 피우기 위해 1년을 인내하는 장미꽃 같은 삶이 있다는 내용이다. 사법시험, 공인회계사 시험, 자산운용사 시험, 선물거래사 시험같이 자격증을 주는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이 가는 길을 찔레꽃 삶에, 기업이나 군대나 정부와 같이 큰 조직의 아랫자리로 들어가서 높은 자리까지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거나, 창업을 해서 큰 회사를 운영하는 길을 장미꽃 삶에 비유한 것이다.

장미꽃 삶이나 찔레꽃 삶은 각각 더 작은 길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장미꽃 삶에는 한 조직에 모든 것을 바치는 평생직장형 인생과 여러 차례 옮겨 다니는 순차이전형 인생이 있다. 1997년 경제위기 이전만 해도 우리 사회는 한 조직에서 실패한 이가 아니라면 웬만해서는 직장을 옮기지 않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명예퇴직이 일반화되면서 더는 평생직장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자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조건을 찾아 부담 없이 직장을 옮기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두세 번만 직장을 옮겨도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었지만 이제는 5, 6회 정도는 자리를 옮겨야 유능한 사람으로 평가를 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한 직장에서 오래 근무하는 사람과 여러 직장을 옮겨 다니는 사람 중 누가 더 큰 성공을 거둘 것인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충분한 경험이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에 쉽사리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미국 사회에서는 이미 결론이 나와 있다. 직원급에서는 직장을 몇 차례 옮긴 사람이 한 직장에서 오래 근무하는 사람보다 승진도 빠르고 연봉도 높은 반면, 임원으로 승진하면서부터는 한 직장을 지킨 사람들이 조직의 중심이 되고 결국 최고경영자의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결국 조직은 전문성과 신뢰성이라는 두 가지 덕목 중 하위직에는 전문성을, 고위직에는 신뢰성을 더 요구한다고 볼 수 있다. 장미 밭의 찔레는 쉽게 눈에 띄지만, 결국에는 장미 밭의 장미가 더 오랜 기간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셈이다.

지나치게 많은 자격증은 되레 失

찔레꽃 삶 역시 한 가지 분야에서 전문성을 확보한 뒤 그 분야에서 승부를 내는 집중형 인생과 여러 분야에 동시에 접근하는 분산형 인생이 있다. 변리사, 관세사, 파이낸셜 플래너 등 전문성을 보장하는 자격증을 가지고 각 분야에서 한 우물을 파는 사람의 삶과 두 개 이상의 분야에서 자격증을 따며 다양한 경험을 쌓는 사람의 삶은 각각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한 분야에 집중하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그 분야를 이끌어 가는 리더가 될 수 있는 반면, 두 개 이상의 분야에 걸쳐 자격을 가진 사람은 상이한 분야를 통합하는 데서 얻어지는 특수성을 기반으로 해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구축할 수 있다. 다만 지나치게 다양한 분야를 선택함으로써 노력을 분산하는 행위는 어떤 분야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될 위험이 있다. ‘자격증 수집자에게는 감점을 주라’는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의 사원 채용 지침도 이런 상황에 대한 경고일 것이다. 찔레 밭에서도 찔레보다는 장미가 더 빛나는 셈이다.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 교수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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