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차근 올라간 사람이 리더로
찾아오는 이들에게 필자는 가끔 ‘장미’와 ‘찔레’의 이야기로 다양한 인생항로를 설명하곤 한다. 늦봄부터 초가을까지 끊임없이 작은 꽃망울을 터뜨리는 찔레꽃 같은 삶이 있는가 하면, 단 한 번 큰 꽃을 피우기 위해 1년을 인내하는 장미꽃 같은 삶이 있다는 내용이다. 사법시험, 공인회계사 시험, 자산운용사 시험, 선물거래사 시험같이 자격증을 주는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이 가는 길을 찔레꽃 삶에, 기업이나 군대나 정부와 같이 큰 조직의 아랫자리로 들어가서 높은 자리까지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거나, 창업을 해서 큰 회사를 운영하는 길을 장미꽃 삶에 비유한 것이다.
장미꽃 삶이나 찔레꽃 삶은 각각 더 작은 길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장미꽃 삶에는 한 조직에 모든 것을 바치는 평생직장형 인생과 여러 차례 옮겨 다니는 순차이전형 인생이 있다. 1997년 경제위기 이전만 해도 우리 사회는 한 조직에서 실패한 이가 아니라면 웬만해서는 직장을 옮기지 않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명예퇴직이 일반화되면서 더는 평생직장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자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조건을 찾아 부담 없이 직장을 옮기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두세 번만 직장을 옮겨도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었지만 이제는 5, 6회 정도는 자리를 옮겨야 유능한 사람으로 평가를 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한 직장에서 오래 근무하는 사람과 여러 직장을 옮겨 다니는 사람 중 누가 더 큰 성공을 거둘 것인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충분한 경험이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에 쉽사리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미국 사회에서는 이미 결론이 나와 있다. 직원급에서는 직장을 몇 차례 옮긴 사람이 한 직장에서 오래 근무하는 사람보다 승진도 빠르고 연봉도 높은 반면, 임원으로 승진하면서부터는 한 직장을 지킨 사람들이 조직의 중심이 되고 결국 최고경영자의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결국 조직은 전문성과 신뢰성이라는 두 가지 덕목 중 하위직에는 전문성을, 고위직에는 신뢰성을 더 요구한다고 볼 수 있다. 장미 밭의 찔레는 쉽게 눈에 띄지만, 결국에는 장미 밭의 장미가 더 오랜 기간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셈이다.
지나치게 많은 자격증은 되레 失
찔레꽃 삶 역시 한 가지 분야에서 전문성을 확보한 뒤 그 분야에서 승부를 내는 집중형 인생과 여러 분야에 동시에 접근하는 분산형 인생이 있다. 변리사, 관세사, 파이낸셜 플래너 등 전문성을 보장하는 자격증을 가지고 각 분야에서 한 우물을 파는 사람의 삶과 두 개 이상의 분야에서 자격증을 따며 다양한 경험을 쌓는 사람의 삶은 각각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한 분야에 집중하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그 분야를 이끌어 가는 리더가 될 수 있는 반면, 두 개 이상의 분야에 걸쳐 자격을 가진 사람은 상이한 분야를 통합하는 데서 얻어지는 특수성을 기반으로 해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구축할 수 있다. 다만 지나치게 다양한 분야를 선택함으로써 노력을 분산하는 행위는 어떤 분야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될 위험이 있다. ‘자격증 수집자에게는 감점을 주라’는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의 사원 채용 지침도 이런 상황에 대한 경고일 것이다. 찔레 밭에서도 찔레보다는 장미가 더 빛나는 셈이다.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 교수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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