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고기정]심상치 않은 ‘청약률 0’

  • 입력 2007년 10월 10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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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시작된 주택 미분양 사태가 드디어 서울 강남지역까지 덮쳤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짓는 한 아파트가 외환위기 후 처음으로 ‘실질 청약률 제로(0)’를 기록한 것이다. 현 정부가 강남 집값을 잡겠다며 쏟아 낸 각종 대책이 드디어 약발을 받는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본보 9일자 A3면 참조
▶서울 강남서도 ‘청약률 0’ 아파트 나왔다

하지만 집값이 떨어졌다는 증거는 별로 없다. 올해 서울 집값은 오히려 소폭 올랐다. 일부 관료는 “집값이 ‘8·31 부동산 종합대책’(2005년 8월 31일) 이전 수준으로 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집값은 하락하지 않은 채 미분양으로 건설사 부도만 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무주택 서민을 위한 대표적 정책인 ‘분양가 상한제’를 보자.

분양가 상한제는 고(高)분양가가 기존 집값을 자극하고, 다시 분양가를 높이는 악순환을 막기 위한 취지였다. 하지만 ‘10년 전매 제한’이라는 족쇄를 걸어 놓아 서민들도 청약을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그동안 집을 못 팔게 한다는데 선뜻 분양가 상한제 대상 아파트를 구입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분양가 상한제의 적용 시점도 미분양 사태를 촉발시켰다. 정부는 연초부터 “9월에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겠다”고 밝혀 왔다. 어느 정도 유예기간을 준 셈이다. 하지만 분양가 상한제 이후의 상황을 예측하기 어려운 건설사들로서는 지역을 불문하고 기존에 갖고 있던 사업 물량을 일시에 털어 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무리한 ‘밀어내기식 공급’이 발생했고 대량 미분양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8월에 사업승인을 받은 민간택지 내 아파트 사업장은 작년 같은 기간의 11배에 이른다. 이 때문에 분양가 상한제 적용 시기를 지역별로 차등화하거나, 유예기간을 좀 더 줬다면 미분양 물량의 적체 현상을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전형적인 ‘규제 시장’이다. 각종 인·허가는 물론 청약제도까지 정부가 틀어쥐고 있다.

집값은 떨어지지 않는데 미분양과 건설업체 도산이 늘어나는 ‘이상한 풍경’을 초래한 책임에서 주택업계도 자유롭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영향력이 강한 한국 부동산 시장의 현주소를 생각하면 정교하지 못한 정책이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고기정 경제부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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