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 위원장이 싫어하는 말은 않겠다는 노 대통령

  • 입력 2007년 10월 5일 22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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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그제 방북 마지막 일정으로 개성공단에 들러 “이곳은 남북이 하나 되고 함께 성공하는 자리이지, 누구를 개혁 개방시키는 자리가 아니다. 개혁 개방은 북측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에 가면 적어도 정부는 그런 말(개혁 개방)을 쓰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이 정권의 대북(對北)정책 기조를 바꿀 생각이 아니라면 중대한 실언(失言)이다. 노 대통령은 이에 앞서 평양 체류 중에도 ‘김정일 위원장이 개혁 개방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될수록 북을 자극하지 말고 교류협력을 전략적으로 진전시켜 나가자는 뜻의 표현일 수 있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대통령이 국민과 세계가 지켜보는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그런 발언을 한 것은 김 위원장이 싫어하는 말이면 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비친다.

이 정권의 대북정책인 ‘평화·번영정책’은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을 계승한 포용정책이다. 이 정책의 논리적 토대에는 ‘북에 햇볕을 쪼이듯 도와주면 스스로 폐쇄의 외투를 벗고 개혁 개방으로 나올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런 전제 아래서 지난 10년간 천문학적 액수의 지원을 북에 쏟아 부었다. 그리고 그제 남북 정상선언에서 헤아리기 벅찰 정도의 대북 경제지원을 약속했다. 그럼에도 “개혁 개방은 북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한다면 도대체 무얼 위한 포용정책인지 따지지 않을 수 없다. ‘개혁 개방’은 입에 담지도 말고 그저 국민 혈세로 퍼 주기만 계속하잔 말인가.

노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도 “제의는 했지만 합의를 이뤄 내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다. 모두 김 위원장이 싫어하는 문제들이다. 정상선언 2항의 ‘내부 문제 불간섭, 통일 지향한 법률적·제도적 장치 정비’도 결국은 김 위원장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것이며, 북이 요구하는 국가보안법 폐지는 문서로 보장한 셈이다.

줄 것은 달라는 대로 다 주다시피 하면서 언제까지 북의 눈치만 볼 것인가. 이런 대북정책이 지속되다 보면 대북지원에 더욱 냉담해지는 국민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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