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후지와라 기이치]日‘반쪽 민주주의’의 종언

  • 입력 2007년 8월 24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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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참패한 뒤에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물러나지 않았다. 일본 미디어는 이상한 일이라며 아베 총리가 사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나는 이것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총리 사임이 아니라 정권 교체를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권 교체 가능성은 예전 어느 때보다 높다.

자민당은 1955년 출범 이후 1993년부터 이듬해까지의 정말 잠시를 제외하고는 반세기 동안 항상 여당이었다. 일본에 민주주의가 보장된 이상 논리적으로는 정권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일본의 많은 유권자가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자민당이 아닌 다른 정당이 정권을 잡는 일은 없다”고 생각해 왔다.

‘정권은 못 바꿔도 총리를 바꿀 수 있다.’ 사실상 정권 교체를 포기한 일본의 유권자들은 선거에서 자민당을 패배시킴으로써 총리 교체를 요구하게 됐다. 이번 참패 후 아베 총리가 물러나야 한다는 매스컴의 주장은 이런 전통에 따른 것이다.

원래 자민당은 소규모 보수 정당들이 연합한 것 같은 정당이다. 자민당의 파벌은 정당에 필적하는 조직을 만들어 왔다. 선거에서 패배하거나 총리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총리가 소속된 파벌은 총리를 배출하고 싶어 하는 다른 파벌의 압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권력을 갖고 싶다면 총리 직을 내줘야 했고, 총리 직을 유지하고 싶다면 권력을 다른 파벌에 넘겨줘야 했다. 총리를 바꿈으로써 자민당 정권은 계속돼 온 것이다.

그러나 중선거구제를 개혁하면서 파벌의 힘은 급격히 쇠퇴했다. 지금 아베 총리에게 퇴진 압력을 가하는 세력이 약한 이유는 자민당에서 총리, 즉 총재의 권력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 아베 총리를 배출한 ‘세이와카이(淸和會)’의 힘은 압도적이다.

반면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의 흐름을 이은 ‘게이세이카이(經世會)’는 그림자조차 없어졌다. 보수정치의 본류를 형성해 온 ‘고치카이(宏池會)’는 몇 개의 그룹으로 분열되고 말았다. 더구나 아베 총리를 배출한 세이와카이에는 그보다 인기가 높은 후보가 없다. 이렇게 해서 아베 총리가 선거에 지고도 퇴진하지 않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아베 정권은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것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의 정국을 생각해 보자.

우선 새 내각이 공격을 받을 것이다. 지금 아베 총리는 개각을 통한 정권 연장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새 내각 발족까지 1개월 가까이 끄는 바람에 야당인 민주당과 매스컴은 새 각료를 ‘두드릴’ 준비를 마쳤다. 아베 내각이 참의원 선거에 패배한 주된 이유는 각료 인사 실패였다. 앞으로 정치자금 부정이 발각돼 사임에 몰리는 각료가 나오면 아베 정권은 치명타를 맞게 될 것이다.

다음은 국회다. 총리가 해산할 수 있는 중의원과 달리 참의원 의원에게는 임기 6년이 보장된다. 이번 패배가 너무 컸기 때문에 참의원에서 야당의 우위는 6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참의원이 중의원을 통과한 법안을 거부하면 정치는 마비 상태가 될 것이다.

결국 총선거는 피할 수 없다. 아베 총리는 유임할 공산이 크기 때문에 자민당의 패배는 거의 확실하다. 정권 교체를 선택지에서 배제하고 총리 교체에 기대를 거는 ‘반쪽 민주주의’가 종언을 고하는 날은 가까이 와 있다. 지금 일본의 유권자와 매스미디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까이에.

후지와라 기이치 도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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