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히잡

  • 입력 2007년 8월 15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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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에 납치됐다가 어제 풀려난 김경자, 김지나 씨는 이슬람 여성들의 전통 의상인 히잡(hijab)을 쓰고 있었다. 두 사람은 우리 측에 인도되는 순간, 그동안의 악몽을 떨쳐 버리려는 듯 오래 흐느꼈다고 한다. 히잡 사이로 그들의 울음소리가 새어 나오는 듯하다. 히잡은 ‘보호’와 ‘차별’이라는 이슬람의 이중적 여성관을 상징하는 의상이다.

▷히잡은 아라비아어로 ‘은폐’란 뜻이지만 겸손, 사생활, 도덕성 등과 같은 의미도 있다. 원래 코란에 언급된 히잡은 사람이 쓰는 베일이 아니라 공간을 나누는 커튼이었다. 남자 신도들은 히잡 뒤에서 마호메트의 아내들과 얘기할 수 있다고 코란은 가르쳤다. 이런 히잡을 나중에 여성들이 쓰기 시작하면서 공공장소에서 남녀를 구분 짓는 드레스코드가 됐다.

▷이슬람은 여성 상속권을 기독교사회보다 먼저 인정했을 만큼 남녀를 동등한 존재로 본다. 그렇지만 여성의 역할은 남성과 다르며, 여성은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본다. 히잡도 그런 정신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18세기 무렵부터 중류층 남성들이 성(性)을 마음대로 살 수 있는 하렘 거주 여성이나 여성 노예들을 자유민 여성과 구분하기 위해 히잡을 이용했다. 자신들과 결혼할 수 있는 자유민 여성에게만 히잡을 쓰도록 한 것이다. 그때부터 히잡은 순결과 가문의 영예,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표지로 변질됐다.

▷히잡은 지금도 격렬한 논란의 중심에 있다. 지난달 터키 총선에서는 학교와 공공장소에서의 히잡 착용 금지 규정을 철폐한 집권 정의개발당(AKP)이 승리했다. 히잡 착용 지지자들은 뜻밖에도 이슬람 엘리트 여성이다. 이들은 히잡을 종교적 신념과 여성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징 도구로 본다. 하지만 이슬람 남성들은 코란의 가르침대로 히잡을 쓴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히잡을 쓴 우리 여성 인질 14명이 여전히 탈레반 집단에 잡혀 있다. 탈레반은 이들에게도 김경자, 김지나 씨와 같은 자유를 줘야 한다. 5명의 남성 인질도 안전하게 돌아와야 한다. 이슬람은 무엇보다 평등의 종교가 아니던가.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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